벗고 사는 세상

朴民宇

벗어라!
껍데기를
홀라당 벗고,
부둥켜 안아라.

구도(求道)의
달빛 아래
고뇌를 벗고,
무념무상무지(無念無想無知).

껍데기
벗고 나면
세상은 하나
무한선경(無恨仙境) 세상.

물의 근원

朴民宇

물의 근원으로부터 역사는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수많은 존재의 한계를 넘어 한수(漢水)가 되고,
우주의 끝을 향하여 날아간 사람은 은하수(銀河水)가 되었다.

물과 같은 것은 무색하다.

물이 검은지 하얀지 알지 못하고,
북방의 주인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추운 날 고양이 갈 곳도 없이

朴民宇

난간 밑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자동차

차 밑에 고양이
고양이 밑에 똥구멍

먹자고 하는 일
서럽기는 마찬가지

물 불 안 가리고 개잡떠는 사람들

朴民宇

물을 보고 불이라 하고
불을 보고 물이라 하면

물은 불이요 불은 물이다.

나무의 시련기(試鍊期)

朴民宇

힌 머리
빨간 얼굴
푸른 빛 감춘
나무의 시련기(試鍊期)

예수님
이름으로
메리X마스(Cristmas)
해피뉴우이어(Happy New year)

동짓달
시련기에
개잎갈나무,
서리 치며 운다.

어머니
계시는 곳
바이칼 호수,
그리워서 운다.

* 개잎갈나무  : '히말라야시다'의 우리식 이름, 원산지는 히말라야 북서부와 아프카니스탄, 시베리아 일대 마고성이 있었던 자리.

정 암 사

朴民宇

잘 난 인생 잘 살면
못 난 인생 못 사느냐

못 난 인생 사는 것이
잘 살 때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노력해서 못 하는 일 있더냐?
노력하지 않고서 잘살기 바라지마라.

2012년 어떤 가을날

朴民宇

11월 11일 11시 11분 일요일 아침, 비바람에 떨던 늦가을 차량통제실
호출번호 11번, 벨이 울리고 차량이 무단 돌진 통제봉 파손을 알린다.

상황이 이런데 아침부터 비까지 내려 세상은 온통 1과 일의 홍수에 잠겨버렸다.

나는 일요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제이를 닦고 낯짝에 물을 쳐바르는데 마치 고양이가 세수하는 것 같더라.

아침 율똥은 11, 비는 12다.

일요일도 일하는 직업이란!
말만 서비스업이지 잡역부나 다름없다.

홍우(紅雨)가 쏟아지는 날,
온종일 비질을 해야하는 禹氏, 李氏에게
일테면 오늘 점심은 국수입니다.

신발 한 켤레 빨아서 소화기 옆에 나란히 세워 놓고
깔창 두 개 집게에 매달려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