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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 [이 사람] 상고사 연구가 박민우씨 소설 ‘님금나무’ 발간
  2016/11/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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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일보 2016.3.29

 

 

[이 사람] 상고사 연구가 박민우씨 소설 ‘님금나무’ 발간

“능금 어원이 임금…대구 평광동 사과나무 보고 소설 착안”

 

지난달 상고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님금나무’를 펴낸 박민우씨가 팔짱을 낀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상고사 연구에 25년간 매달려
신화로서의 단군 조선이 아닌
역사적 사실 바탕한 팩션소설
히말라야산맥 배경 민족 생성
어떻게 이동했는지 등 엮어내”

“돌아가신 율곤 선생께서 생전에 다하지 못한 말씀을 영(靈)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해낼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지난달 환단원류사를 주제로 한 소설‘님금나무’를 펴낸 박민우씨는 출판사(한단서림 대표)를 경영하며 25년간 상고사 연구에 매진해온 인물이다. 그는 4개월여간 소설을 신들린 듯 썼다. 상고사 전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님금나무는 히말라야산맥을 배경으로 해 우리 민족이 어떻게 생성됐으며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소설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님금나무가 신화로서의 단군조선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팩션소설’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구시 동구 평광동엔 국내 최고령 사과나무가 있었습니다. 사과는 능금이라고도 불리는데 어원이 닝금 즉 임금입니다. 능금은 생명, 지혜, 욕망을 상징하는데 평광동 사과나무를 보고 소설을 착안했습니다.”

박 대표가 상고사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30대 초반 상고사학자이자 역술가 율곤 이중재 선생이 쓴 ‘처음으로 밝혀진 한민족사’란 책을 읽고 나서부터다. 이때부터 그는 율곤이 쓴 모든 저서와 논문을 구해 탐독했다. 책을 읽다 궁금한 게 있으면 자정에도 전화를 하고,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다.

“스승께선 아무리 늦은 시간에 전화해도 친절하게 상담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학문정진을 위해 어떤 고통도 참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지혜를 가진 자가 미래를 세운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는 율곤의 제자인 노성매씨와 함께 제1기 율곤학회 홈페이지를 만드는 등 인터넷 역사게시판과 칼럼집필을 통해 율곤의 학문을 알렸다. 지난해 그는 13년간 율곤학회 홈페이지에 써왔던 글을 정리해 ‘환단원류사’란 방대한 분량의 책을 냈다. 이 책은 부도지(符都誌)를 재해석하고 환단의 뿌리를 찾아 엮은 것이다. 이전에 발표한 ‘동이(東夷)는 천문학자’를 보강한 것이기도 하다.

“환단의 뿌리는 무(巫) 정신입니다. 무는 무(MU)제국이고 모(母)이며 마고(麻姑)입니다. 무는 천(天), 지(地), 인(人)을 갖춘 하늘의 증표이니 천부인(天符印)은 무가 없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박 대표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적이 없는 재야 상고사학자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라 직업훈련원에서 용접기술을 배워 산업현장에 갔습니다. 일을 하다 왼손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겪었지요.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은 절절했습니다.”

그는 진학을 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독학으로 대구공고 특별과에 전면 장학생으로 입학해 졸업을 했다. 하지만 대학진학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했지만 투병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한스러웠죠.”

사람을 웃기는 데 소질이 있는 그는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DJ, MC, 밤무대 가수 등을 전전했다. 29세에 결혼을 하고 음반가게를 차렸으나 1년 만에 실패했다. 다시 용접기술로 반야월에 있는 한 공업사에 취직해 공장장이 됐다. 그때부터 여유도 생겼다.

“대구시내 도서관이란 도서관은 다 가보았습니다. 인문, 역사, 지리, 철학, 소설 등을 빌려 미친 듯이 읽었습니다. 읽은 책만도 수천 권을 넘을 겁니다. 특히 상고사에 관심이 많아 집중적으로 파고들다보니 소설까지 쓰게 됐네요.”

홈페이지 제작 전문가로서 인터넷 율곤학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2004년 ‘천제환국상고사 BC8937’을 만들고 지난해엔 환단원류사 다음카페를 만들었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만도 현재 5개다.

“부도지가 진본이 없어 아직 강단사학계에선 우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원본이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그걸 찾아야겠지요. 상고사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대중이 알기 쉽도록 이번에 소설로 펴냈는데 책이 많이 읽히면 좋겠습니다.”

그는 님금나무가 출판된 지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00권 이상 팔렸다고 자랑했다.

“역사는 한 사람과 한 집단이 독점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다양한 해석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학문과 표현, 사상의 자유가 억압돼선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퇴행적인 정책입니다.”

그는 남들이 이상주의라 비판해도 앞으로 계속해 한민족의 뿌리와 원류를 찾기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이라고 당찬 결의를 내보였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Title : 신라사의 정역 학술발표회
  2009/10/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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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 내가 아는 두사람
  2009/8/3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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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시인 이창원(자유문학회)과 노성매(율곤학회) 충정로上古史學會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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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만추

철지난 포도밭에서 다 시들은 포도를 따 먹는다.

 



       
  Title : 광화문연가와 정동길 그리고 작곡가 이영훈
  2009/7/15(수)
  조회: 1
 

기도하는 꺄악!! 
조용필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슈퍼스타였습니다. 정말 독보적이다 할 정도로  슈퍼스타였죠.
조용필이 한국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한국가요를 진일보하게 업그레이드 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이영훈씨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문세의 노래로 잘 알려진.  그녀의 웃음소리뿐, 사랑이지나가면,  굿바이,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붉은 노을을 작곡한 작곡가이죠.  작사도 다 이영훈씨가 했습니다

이문세는 라디오DJ로는 유명했지만 이렇다할 히트곡이 많지가 않은 가수였습니다. 그런 이문세가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되게 해준것은 이영훈씨를 만나서부터였죠. 이영훈씨와 함께 만든  이문세3집은   조용필에 열광하던 소녀들을  이문세에게로  향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문세4집을 먼저 듣고 이문세3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문세씨가 TV가요순위 프로그램에 나오지를 않으니 소녀와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히트를 쳐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중3 겨울방학때  이문세4집을 알게되고 그의 음악의 주옥같음에 연일 별밤을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절이 있었죠.

이영훈씨의 노래는  세련됨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클래식적인 선율과  서정적인 노래가사는 한편의 시와 같았죠
거기에 보이스매력이 별로 없을것 같은  이문세의 새로운 보이스적인 찰진 매력이 잘 묻어나오고요.  이문세 4집은 28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음반판매량을 기록합니다. 저희집에도 있었고 이문세4집이 없었던 집이 없었을 정도로 정말 많이 팔렸죠
김건모 3집이 330만장으로 단일 앨범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CD와 LP TAPE등이 다 판매되던 시절이라서 CD가 없었던 87년에 발매한  이문세4집을 개인적으로는 1위로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을 폄하하는것은 아니구요.

가수영향력 사회적 반향등 종합적으로 보면 이문세4집이 국내 앨범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3집과 4집 연이은 대히트로  킹프로더션은 킹레코드라는 레코드공장을 하나 만듭니다 그리고 붉은노을이 있는 5집을 내죠.
5집앨범은 4집앨범보다 5백원이나 비싸서  욕좀 먹었어요. 인기있어졌다고 앨범가격을 5백원이나 올리고 당시 5백원은 큰돈이었거든요.  그리고 노래도 4집에 비해서 별로였습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붉은놀을등이 대표곡으로 나왔구 시를 위한시도 있었죠.
그러나 5집이 못났다고 하기보단 4집이 워낙 대박을 터트리고 4집수준을 요구했던  팬을에게 5집은 그 욕구에 미달된 앨범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서서히 이문세는  인기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문세, 이영훈은 계속 앨범작업을 하다가 예전같이 않은 인기와  매너리즘에 푹 빠져서 대중들에게 잊혀져 갑니다.

그리고 이영훈씨의 대장암 말기소식을 듣게 되었죠. 우리가 잊고 살았던 내 10대 후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작곡가가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어 한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그리고  이문세씨의 눈물속에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영훈씨가 몇년전에 라디오에 나와서 이야기하는것을 정말 우연히 들었는데  매너리즘에 빠지고 매번 똑같은 멜로디만 나와서 대중들이 외면한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몇일전에  정동길에서 이영훈씨 노래 광화문연가 노래 제막비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연가는 이문세5집에 있던 곡인데요.
당시 들을때만해도 가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동길이 어딘지도 몰랐구요. 그러나 이제는 자주 걷는 거리가 되었죠.
광화문연가 가사에 보면 정동길과 조그만 교회당이 나옵니다.  그 교회당은 바로  정동교회인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세월은 흘러서 사람은 변해가고 사라지지만  교회당은 사라지지 않고 그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정동길은 참 아담하고 소박하고 
다소곳하고 정갈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리입니다. 정동교회와  정동극장, 이화여고가 있고 러시아 공사관과 예원학원과  정동시네마, 캐나다대사관 그리고 그앞의 나이많은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그곳을 추억에 젖어서 걸어 봤습니다.  작곡가 이영훈씨가  수없이 걸었을 그 길을 광화문연가를  MP3에 다운받아서  귀에 걸치고
음미하면서 걸어 봤습니다.  이영훈씨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보석같은 노래는 여러 사람의 입에서 구전될것 입니다.


 



       
  Title : 「新羅史」 正譯에 대한 고찰 사진자료
  2009/4/25(토)
  조회: 3
 
「新羅史」 正譯에 대한 고찰 사진자료  
관리자
1240635317_1.gif (size: 3,961,086Kb)

 

 

 

 

 

 

 

 

 

 

 

 

 

 

 

 

 

 

 

 

 

 

 

 

 

 

 

 

 

 

 

 

 

 

 

 

 

 

 

 



       
  Title : 상고사학회 제11차 학술세미나 '신라의 뿌리역사'
  2007/9/3(월)
  조회: 2333
 

 

 

상고사학회 제11차 학술세미나 '신라의 뿌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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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 歷史지도집/高句驪뿌리역사/서해군유지비(西海郡遺址碑)
  2007/9/1(토)
  조회: 198
 

 



  筆者는 2004年 한民族 大學生 一行과 權哲賢 議員 등 25名과 함께 中國大陸 踏査를 다녀왔다. 15박 16일간 朱蒙의 墓地가 있다는 龍山과 유리왕(琉璃王)의 墓地와 사당이 있다는 곳을 답사했다. 洛陽에 있는 北邙山에 百濟 義慈王 墓地가 있는 것을 알고 갔지만 비석이 없어 찾지 못했다. 그러나 靑海省에 들렀을 때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王莽이 山東省과 洛陽을 中心으로 活動한 것으로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靑海湖 입구에 갔을 때 西海郡遺址碑記라는 비석이 2002년 中國 靑海省 人民政府에 의해 세워져 있었다.

<靑海省 碑記>

비문의 內容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事實을 발견할 수 있었다. 王莽이 靑海省 一帶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또한 靑海湖는 옛 靑海 바다로 朝鮮의 바다라고 記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王莽은 高句麗 8代 新大王으로 그 당시만 하더라도 山東省 일대에서 靑海省과 甘肅省 東南部 그리고 西安을 中心으로 陝西省, 山西省, 河南省까지 광범위하게 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Title : 오리지날 백수가 따뜻한 봄날에 양지녘에 쪼그려 앉은 모습
  2007/5/28(월)
  조회: 93
 

 

 

 

오리지날 백수가 따뜻한 봄날에 양지녘에 쪼그려 앉은 모습,  때는 바야흐르 1980년초...

아! 벌써 27년이나...

그때 그시절 저 더벅머리...

그리고 짝도 안맞는 딸딸이...ㅋㅋㅋ

저 까만색 딸딸이를 아시는가?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서 만든 것이다. 이러러 만년구찌!

죽어도 안닳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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