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무늬 수막새(자유시)

박민우

언제 어디서 우리가 만났던가!

영묘사(靈廟寺) 터에 누워 천년을 살았을 제 1934년.

당신은 눈가에 주름 섞인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낯선 일국(日國)에 끌려갔다. 

반쯤 깨진 수막새 얼굴을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는 사랑했을 것이다. 

1972년, 다시 돌아온 수막새는 천년의 미소를 지으며 깨어났다. 

언제 어디서 우리가 만났던가!

얼굴 반쪽이 되었어도 살아있는 듯한 그녀의 미소.

이제 막 껍질을 벗기고 세상에 태어난 내가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전생에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초적 관능으로 밀로의 Venus를 보는 이국(夷國)의 눈은

부서져 깨져버린 두 팔 따위엔 관심이 없다. 

눈가에 잔주름 섞인 얼굴무늬 수막새는 

깨진 얼굴 조차도 아름다우니 

정녕 내가 사랑하던 여인의 얼굴이다.

어찌 삼국(三國)의 미소가 아니겠는가! 

 * 일국(日國) : 日本

 * 이국(夷國) : 東夷의 나라

 * 삼국(三國) : 高句麗, 百濟, 新羅

 *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는 경주 영묘사 터(靈廟寺址, 현재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수막새(원와당, 圓瓦當)이다. 1934년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라는 일본인 의사가 경주의 한 골동상점에서 구입한 뒤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고(故) 박일훈 (전)국립경주박물관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10월 국내로 돌아온 환수문화재이다.

  * 수막새: 목조건축의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된 둥근 형태로 만든 와당으로 ‘원와당(圓瓦當)’으로 불림. 반면 수막새 아래 좌우로 장방형으로 부착된 드림새를 암막새(평와당)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