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 - 실패한 결혼의 모습

 宿命論
PKwon 조회 353 | 10.04.08 14:35 http://cafe.daum.net/vandalism/EikL/1678
사실 이 글은 2회 정도로 나누어야 할 글인데, 길어지면 위에 잇도록 하고 일단 시작 하갔습니다.

==권비영이란 사람이 덕혜옹주에 대한 소설을 써서 잘 팔린다는데, 사실 평을 보니 그리 잘 쓴 소설은 아니라더군요. 아마도, 왕자 공주를 동경하는 골빈 사람들이 이런 주제를 좋아하나 봅니다.

한국인들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을 쓸 때에 가장 큰 문제가, 당시 일본의 시대상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가운데에 펜을 든다는 점입니다. 기껏해야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들이 썼던 당시 기사나 찌라시들 갖고 유추하지요.

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시대에 대해 웬만한 학자들 못지 않은 연구를 하였고, 또한 당시 사진들을 여러 님들께서 정보공유 등에 올려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혜옹주의 남편인 소 다케유키는 아무 죄도 없이 오랫동안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아 온 인물입니다.

덕혜옹주만 한없이 착한 희생자로 기록하느라고 소 다케유키는 애꾸눈이다, 정신병자다 이렇게 사실과는 다른 소설을 지어내서 나쁜 놈으로 취급되었는데  (실제로는 꽤 존경받는 영문학자였다고 함), 이 사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니 한국에서도 이런 남편은 찾아 보기 힘들더군요.

원래 소(宗)씨 일족들은 대대손손 쓰시마를 다스리던 집안입니다. 쓰시마는 조선과 일본의 중계무역을 담당해서, 섬의 크기에 비해서는 상당히 부유한 '12만석' 의 연 수입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12만석 쯤 되면 영주들 중 메이저급은 못 되어도 쫄지는 않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할 때에 대개 소씨 집안 영주가 보낸 사람이 국서를 가져왔기 때문에, 가뜩이나 조선에선 일본을 멸시하는데 그 궂은 일들을 소씨 일족들이 맡아 하고 있으니, 조선왕실에서는 소씨 일족들을 대문 들어갈 때에 밟고 지나가는 양탄자 수준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명치유신 이후 소씨 일족들도 화족이 되어 백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 글의 주인공인 소 다케유키는 아버지가 다른 집안에 입양가 있다가, 전대 백작인 백부가 후사가 없어서 양자가 되어 백작을 계승한 인물입니다.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의 결혼을 주선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소씨 일족들이 대대로 조선과 일본의 외교에 앞장섰으니, 그 공적에 보답하는 의미로 소씨 일족의 당주인 다케유키와 조선 왕의 하나뿐인 딸 덕혜옹주의 결혼을 주선하였던 것 같습니다.

기실, 소씨 일족들의 눈으로 볼 때는, 대대손손 일본 조정의 명을 받들어 조선에 왔다갔다 할 때마다 조선에서는 멸시와 천대만 당하고 왔었는데, 비록 조선이 망한 후이긴 하나 조선 왕의 딸과 혼사를 맺는다는 걸 그 시점에는 별로 나쁘지는 않게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또한 소씨는 백작인데 반해, 조선 왕족들은 일본 황족 직계의 바로 밑인 13궁가 (무슨 무슨 미야(宮)자 붙는, 정통은 아니지만 황실가족으로 인정되는 황족들) 와 동격으로 취급되었으니, 집안의 격을 올리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처음 떠나기 전, 고종은 그녀를 김장한과 결혼시키려 하였습니다. 김장한의 형으로 후에 덕혜옹주를 한국에 데려온 김을한이 1905년 생이니, 김장한은 그보다 더 어렸을 것이고 덕혜옹주는 1912년생이므로 6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시점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려 했던 것은 고종이 일본에게 반항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문을 높이려던 김황진 (김을한, 김장한의 숙부) 이 벌인 수작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소스는 김을한이기 때문에, 김을한이 쓴 소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덕혜옹주는 일본에 가서, 1931년 소 다케유키와 결혼ㅎㅒㅆ습니다.

그런데, 이미 덕혜옹주는 정신이 좀 이상해져 있던 상태였다더군요. 고종이 늙으막에 나라가 망한 후에도 주책없이 낳은 딸이라 오냐 오냐 하고 버릇없이 키워서 어려서부터 안하 무인이었는데, 막상 일본에 가 보니 망국의 아무도 안 돌아보는 왕녀에 불과하더라 이거입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혼란이 온 거 같은데,

어쨌든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그녀는 딸 마사에 하나만 낳고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았습니다. 다케유키 자신도 양자로 들어온 터라 자손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그냥 참았습니다.

대대로 조선왕실에서는 대마도의 종씨(소씨) 를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하게 보았는데, 그런 집안에 시집을 갔으니 덕혜옹주가 다케유키를 제대로 된 눈으로 보았겠습니까?

어쨌든, 다케유키는 갈수록 발작이 심해지는 덕혜옹주의 꼴을, 십여 년이나 보고 살았습니다.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한국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쪼잔한 면이 강한데, 한국에서 어떤 남편이 그러고 살겠습니까?

아마도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맡으라는 황후의 명을 받았으니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고 나라를 위한 의무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정신병을 앓는 덕혜옹주의 꼴을 그냥 보고 살았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귀족이고 뭐고 다 없어지자, 그제서야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패전을 했으니 옛 질서는 무너졌고, 그에 따른 여러 의무들도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두 사람은 1953년에야 공식적으로 이혼했는데, 다케유키는 22년간 본의든 아니든 감당이 안 되는 아내와 사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다케유키는 외동딸 마사에를 결혼까지 시켰지만, 그녀도 어머니를 닮아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었고,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지 어ㅉㅒㅆ는지는 몰라도 결혼한 다음해에 깊은 산에 들어가서 자살해 버렸습니다. 시체조차 못 찾게 했다더군요. 하여간에 어머니가 민폐면 자식도 민폐가 되는 겁니다.

이제 다케유키는 나이 50줄에 아무것도 안 남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을 거의 다 헛되이 보낸 것이지요.

그나마 그는 그 나이에 재혼을 해서 2남 1녀를 봤고 30년을 더 살았으니, 허송했던 초, 중반의 생을 말년에는 그런대로 보상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1972년인가에 다케유키가 창덕궁 낙선재에 살고 있던 덕혜옹주를 한번 만나려고 왔었는데, 그녀는 그래도 20여년 동안 자기의 꼴을 봐 주었던 남편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더군요. 솔직히 말해, 민족을 떠나 이건 덕혜옹주의 인간성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해 줍니다.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의 결혼이 실패한 잘못을 따지자면, 대부분의 항국인들은 덕혜옹주 0 소 다케유키 100*100000 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볼 때는 덕혜옹주의 잘못이 75, 소 다케유키의 잘못이 25라고 봅니다. 소 다케유키도 완전히 다 잘하지만은 않았을 테니 25라고 하였으나, 그래도 그녀를 이해해 보려고 했던 노력이 가상했던 것에 반해 덕혜옹주는 다케유키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눈꼽 만큼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망국의 공주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이에 적응을 했어야지, 어려서 오냐 오냐 다 받아 주던 고종이 더 이상 없는데도 어려서의 버릇을 죽을 때까지 못 버렸으니, 어렸을 때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엿보게 해 주지요.

'이거 폴권 이 색기 또 왜놈 편드네' 하겠지만, 나는 한국인이라도 잘못한 건 깝니다. 이들의 신분이나 국적을 떠나, 실패하는 결혼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기에 다른 부수적인 건 모두 배제하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