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주에서 심양을 거쳐 연경(북경)에 이르는 경로를 상세히 그린 지도. 18세기 말기에 제작된 지도첩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돼 있는데, 당시 중국을 왕래하는 우리나라 사신들을 위해 작성된 듯하다. 주요 경유지와 함께 청나라가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목책木柵과 출입문을 표시했다. (채색사본 152.5cm×60cm, 서울대 규장각 소장) 조선 시대 중국 연경에 파견된 사신들이 기록한 <연행록>은 학문과 기술 그리고 사상을 교류하는 중세의 창구였다. 조선의 의식 있는 ‘젊은 지식인’들은 중국 연행에서 서적과 안경 등 일상용품을 비롯, 천주교 사상과 지도를 들여와 은둔의 나라로 자족했던 조선의 지식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주었다.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중화中華’의 나라를 꿈꾸는 중국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론을 모색하려면, 중세의 <연행록>에 담긴 치열한 사유들을 재음미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가장 가까우면서 오래된 이웃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한동안 교류가 끊어지기는 했지만, 지난 1992년 수교를 재개하면서 그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시절을 한꺼번에 벌충하려는 듯 인적·물적 교류가 해일처럼 거셌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가 있는 한국사람이 3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고, 어느덧 우리가 먹고 입고 들고 다니는 물건에 ‘made in china’가 안 쓰인 것이 없게 되었다. 관광객을 가득 태운 비행기와 배가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고, 두 나라의 대학에 유학생이 없는 곳이 드물다. 역사상 이렇게 서로의 땅을 내남없이 드나들던 때가 있었던가? 서적, 천주교, 지도 등 문화를 실어나른 ‘연경사’ 우리 역사에서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시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당나라가 바다를 활짝 열자 신라의 관료, 학자, 유학생, 승려, 상인들이 서해를 작은 시냇물로 여기고 넘나들었다. 한·중·일 세 나라간의 교역이 원활하도록 바다를 지킨 장보고張保皐(?~846)는 그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원나라가 역참제驛站制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하나의 세계로 열어 놓았던 때가 있었지만, 그것은 교류가 아닌 침략의 결과였다. 정화鄭和(1371?~1434?)의 남해 원정을 정점으로 명나라가 정체되면서 바닷길이 닫히기 시작했고, 오직 왜구만이 자유롭게 약탈하고 돌아다녔을 뿐이다. 청나라 때가 되자 동아시아 삼국은 밖으로 통하는 창구를 한두 곳으로 한정하고, 국가 성원들의 이동과 교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쇄국의 시대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으로 하나의 큰 시장으로 다시 열리기까지 이 고립된 길을 오가던 공식적인 존재는 전쟁을 위한 군대와 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들뿐이었다. 사신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었고, 이들이 이동한 길은 문화를 실어나르는 실핏줄이었다. 제국의 수도 북경에 세계의 물산과 문화가 모여들었고, 조선의 사신들은 학문과 기술, 사상을 부지런히 들여왔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중국은 국가 기밀이 샌다 하여 금수품禁輸品을 정해 놓았고,조선은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에 반하는 새로운 사조를 경계하여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 사신은 조선의 북쪽 출구인 의주에서 북경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길로만 이동해야 했다. 현지인들과 말을 주고받는 것도 금지될 정도였다. 북경에 체류하는 동안 정해진 숙소에만 머물러야 했고, 외부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지금의 금강산 관광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의 중심에 왔건만 아무런 문화활동을 할 수 없다 보니, 사행은 소득 없는 힘든 임무로 여겨졌고,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던 몇몇을 제외한 일반 지식인들은 임무를 맡지 않은 이상 구태여 힘든 길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런 풍조는 청나라가 대륙을 석권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청은 국가 운영에 자신감을 얻어 사신들을 숙소에 가두지 않고 북경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했다.유례 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북경 사람들의 풍족한 삶, 유리창琉璃廠의 방대한 서적, 천주당天主堂과 관상대觀象臺, 실측 지도地圖로 표상되는 서구 문명과 접하자,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던 일군의조선 젊은이에게 연행은 큰 배움의 길로 인식되었다. 여기서의 젊은이는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다. 낯선 풍경과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하고 천하의 수재들과 대화하고자 하는, 생각이 젊은 학자들이다. 청을 ‘되놈’, ‘오랑캐’, ‘할아버지의 원수’로 여겨 사신으로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북벌北伐과 척화斥和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선배들과는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다. 벼슬길에 나선 사람들은 사신으로 임명되는 차례를, 관직이 아닌학문에 뜻을 둔 진사進士들은 친인척과 지인들이 사신으로 발탁되기를 기다렸다. 자제군관子弟軍官이 되어 연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무관이나 하는 군복軍服 차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수행원은 공식 사절이 아니므로 의무감으로 길을 떠난 관료들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연행길을 점의 연속으로 여겨 일수 쓰듯 빨리 찍고 끝내고 싶어했지만, 젊은 학자들은 점을 연결하여 선을 그리고 선에서 뛰쳐나와 좌우로 상하로 달려 면을 이루고 공간을 만들어냈다. 동팔참東八站의 험준한 산과 물,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요동벌의 대자연을 기꺼이 걸었고, 그 길에 녹아 있던 장대한 역사의 기억을 되살렸다. 그러므로 이들이 남긴 기록은 보고서로 만들어진 여느 연행록과 달리 생동감이 있다. 남에게 들은 내용[傳聞]을 옮기기도 했지만, 직접 보고 듣고[見聞], 대화[筆談]를 기록했다. 조선 사신들은 연행에서 천주교 남당(위)과 관상대와 같은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접했는가 하면, 연행로 주변에 있는 천산(오른쪽 아래)과 각산에 올라 천하를 내려다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 묘사한 연행록 연행길을 가장 길고 넓게 다녀온 이는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다. 쉰다섯, 집에서 손자를 안고 있을 나이에 김창업은 형 김창집金昌集(1648~1722)을 보살피겠노라며 아버지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연행에서 입던 유서 깊은 갖옷을 입고 만리길을 나선다. 척화파의 우두머리로 청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할아버지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1750~1652)의 아픔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김창업은 “청인淸人은 문치가 적기 때문에 순실淳實한 사람이 많다”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했다. 강박관념을 벗어난 김창업은 ‘조롱을 벗어난 새처럼’ 굳이 동행을 만들려 하지 않고 홀로 떠나 마음껏 즐겼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고, 귀국길에서는 각산角山, 의무려산醫巫閭山, 천산千山, 봉황산鳳凰山 등 연행로 주변의 산에 빠짐없이 올랐다. 그가 우리 산과 비교하여 그다지 높지도 않은 이들 산에 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천하를 내려다보기 위함이었다. 각산은 서쪽 사막까지 이어지는 만리장성이라는 큰 용의 뿔로서 발해渤海가한눈에 들어오고, 의무려산은 요동벌의 끝자락에 있어 한쪽으로는 광대한 평야를 펼쳐지고, 한쪽으로는 곤륜산맥으로 이어지는 변방의 험산 산세를 보여준다. 천산에서는 요동벌 한가운데 우뚝하며, 봉황산에서는 당과 고구려 사이의 장대한 전투가 그려졌다. 각산사에 두고 내려온 필담 기록이 그 지역의 지방지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질 정도로 그의 글은 유려했다. 화가답게 관찰력이 깊고 묘사가뛰어났으며, 무엇보다 연행길의 역사를 한눈에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 뒤(1720)에 숙종의 승하를 알리는 사절의 정사正使인 아버지 영의정 이이명李헊命을 따라간 이기지李器之(1690~1722)는 김창업의 발자취를 따라다녔다. 의무려산 옥천사의 승려들에게 김창업의 안부를 전해 주었고, 영원위寧遠衛에 가서는 김창업이 달게 먹은 동치미를 만든 병자년 포로의 딸인 노파의 죽음을 확인했다. 이이명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로 서양 문물, 특히 지도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터라 거리낌 없이 북경의 서양인 선교사들을 만났다. 이기지는 늘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조문사절로서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아버지 대신 천주당을 방문하기도 했다. 예수회 독일 신부 대진현戴進賢(Ignatius Koegler)과 포르투칼 신부 소림蘇霖(Joseph Suarez)과 함께 천문과 역법, 천국과 지옥의 설에 대해 토론하고, 시계와 망원경, 『직방외기職方外記』와 같은 천문서적을 받아왔다. 이기지가 일기와 문집에 남긴 서양 그림, 건축, 종교에 대한 설명과 감회는 문화사적으로 소중한 자료이다. 이들 부자가 최초로 원주율(π; 3.14)을 고안했고, 요즘 간도間島를 우리 땅으로 표기했다고 화제가 된 실측 중국지도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를 책임 제작한 두덕미杜德美(Jartoux, Pierre, 1668~1720)를 만났더라면 좀더 획기적인 문물교류가 이루어졌을 텐데, 두덕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다.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45년 뒤(1765년)에 천주교당에 방문해 독일 신부 유송령劉松齡(Augustinus von Hallerstein), 포우관鮑友管(Antonuis Gogeisl)을 만나 토론한 데는 앞선 두 선배의 기록이 지침서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들어온 서양 과학과 문물을 습득한 홍대용은 천주당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의 원리를 그 자리에서 이해하고 즉석에서 연주하여 선교사들의 찬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홍대용이 더 힘을 쏟은 데는 중국 선비와의 만남이었다. 안경을 사러 유리창琉璃廠에 나갔다가 우연히 절강浙江의 세 선비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두 달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일곱 번이나 만났으며, 매일 아침 편지를 주고받았다. 소주蘇州의 풍광을 비롯하여 과거科擧 문제, 주자학朱子學과 양명학陽明學의 같고 다름, 예와 복식의 변화, 유교와 불교 같은 ‘천하의 일’을 논의했을 뿐만 아니라, 형제의 의를 맺고 나서는 서로의 언행에 나타난 잘잘못을 깨우쳐 주기까지 했다.그가 남긴 연행록에는 만남의 기록[乾淨洞筆談]이 태반을 차지하며, 곳곳에 만남의 기쁨과 석별의 눈물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연행길은 책문柵門에서 시작하여 봉황성鳳凰城을 지나 마천령摩天嶺을 넘어 요동벌로 들어선다. 조선 사신 일행은 요양遼陽을 지나 태자하太子河를 건너 심양瀋陽에 이르러 공물貢物의 일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요하遼河를 지나 광녕廣寧-금주錦州-영원寧遠-중후소中侯所를 지난 뒤 마침내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렀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요동遼東’ 지역으로 현재의 요녕성遼寧城에 해당한다. 산해관 안쪽은 관내關內라 하여 문명의 중심으로 여겼으니, 지금의 하북성河北省·천진天津·북경北京을 의미했다. 청나라 때 제작된 지도인 <흠정성경통지>는 이른바 ‘천하의 중심’으로 자부했던 중화주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1세기 중국과의 관계 맺기와 연행록의 가치 연행록에는 문물 구경과 선비와의 만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탐구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최근에 “고구려는 한국의 일부도 중국의 일부도 아니며, 요동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건립된 국가”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몇몇 연행록에는 고구려가 망하면서 중국에 넘겨준 북방 강역疆域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을 좌절시킨 안시성安市城은 요동이 우리나라의 옛 땅임을 증명하는 상징적인존재였다. 고고학적 성과까지 동원하는 지금도 정설이 없을 정도로 안시성의 위치를 두고  분분한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대다수 연행사들은 봉황성鳳凰城을 지나면서, 당 태종의 야욕을 저지시킨 안시성 싸움과 양만춘楊萬春의 무용을 노래했다. 정관貞觀의 치세를 두고 당 태종을 영명한 군주로 여겼지만, 그는 남이었고 무도한 사람이라고 매도했어도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조선의 인물이었다. 박지원은 고구려는 도읍지마다 지명을 평양平壤이라 했고, 물을 패수浿水라 했는데, 평양의 위치를 한반도 안에 고정해 놓고 지리상의 위치를 찾으려하는 식자들의 무지와 소심함을 비판했다. 결국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며 탄식했다. 1830년, 1834년 두 차례나 연행을 다녀온 홍경모洪敬模(1774~1851)는 동팔참 3백리를 지켜주는 석문령石門嶺을 거란에게 빼앗기고 압록강을 국경으로 삼은 것을 예로 들어 고려의 용병用兵이 고구려만 못함을 꾸짖었다. 그런 옛 땅은 다 잊고 압록강만을 천참天塹(천혜의 요충지)으로 삼는 조선의 옹졸함은 말해 무엇하랴? 홍경모는 우리는 “고려를 닮은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를 닮은 것인가?”라며 준열하게 물었다. 우리에게 중국은 매우 친숙한 존재이면서 두려운 대상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중국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와 그네들이 지내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연행도 사라지고, 연행길도 과거의 길로 남았지만, 통일만 된다면 서울에서 북경까지 철도와 고속도로가 연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미래의 길인 것이다. 그 길에 쌓인 역사와 기억을 돌아본다면 새로운 관계맺기 방식을 얻을 것이다. 이제 연행록을 길잡이 삼아 연행길을 달리는 것으로 중국 여행을 삼자. 김일환│동국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전문학으로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요논문으로는 ‘조선후기 역관의 여행과 체험 연구’,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기’등이 있다. 현재 선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