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 史記世界

개요  후흑의 달인 조조와 유비  유방의 승리와 항우의 실패  후흑학의 3단계  관직을 구하는 6가지 요령  공무원의 6가지 지침  업무처리 두 비결  후흑경

[개요] 소개에 앞서 요즈음 인물평에 관한 서적이 심심찮게 출판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북대 강준만교수가 이 분야의 대표적인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지훈 조동탁(趙東卓)은 일찍이 지조론과 인물대망론에서 우리 민족이 '기다리는’ 인물을 설파한 바 있으나 최근 간행된 정신과 여의사의 「남자 VS 남자」는 현존하는 각계 대표인물들의 삶과 특징을 이분법적 비교로 분석하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前漢의 사마천이 불후의 명저「列傳」을 통해 최초로 인간학을 탄생시켰으며, 後漢 末 허소(許召+力) 라는 학자가 종형 허정(許靖)과 함께 매월 월초에 품제(品題)를 바꾸어 향당의 인물들을 평론하였다는 데서 '인물의 비평’의 뜻을 지닌「월단(月旦)」이라는 고사가 나왔다. 조조(曺操)를 보고 '치세의 능신(能臣)이요 난세의 간웅(姦雄)’이라 평했는데 허소가 한 말이다. 아래 이종오의 후흑학도 기이하고 흥미있는 月旦이라 소개한다. 후흑학(厚黑學)은 중국 淸末 교수출신인 이종오(李宗五 1879~1944)가 1911년 성도「공론일보」에 발표하여 당시 중국독자들에게 떠들썩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도 대만과 대륙에서 후흑학이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에서는 후흑학에 정면 도전하여 반(反)후흑학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생겨났고, 반후흑학을 뒤집는 반반후흑학이 나왔으며, 또 그것에 반대하는 반반반후흑학이 제기되었을 정도다. 후흑학은 한마디로 '얼굴이 두껍고 뱃속이 시커먼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종오는 중국역사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영웅호걸이라 불리우고 중국역사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인물들이 한결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뱃속이 숯덩이처럼 검어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삼대(중국 하,은 주나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공명을 떨친 수 많은 왕후 장상, 호걸, 성현들이 후흑학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라 반문한다. 낯가죽이 두껍고 뻔뻔할수록, 뱃속이 숯덩이처럼 시컴하여 음흉할수록 성공했다는 것이다. 후라는 것은 후안(厚顔), 즉 낯가죽이 두껍다는 뜻으로 모든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으며, 흑은 흑심(黑心)으로 뱃속이 검어 그런걸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 염치 없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기차의 입석표로 남의 자리에 앉고서도 조금도 불안하지 않으며, 임자가 나타나면 태연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후흑의 기초적인 기량은 이미 갖추어졌다 할 수 있다. 여기에 수련을 쌓아 아무리 낯가죽이 두껍고, 뱃속이 검더라도 그것을 간파할 수 없고 또 두껍거나 시커멓다고 여기지 않게 되는 무형무색(無形無色)의 지극한 경지에 다달아야 후흑학은 끝난다는 것이다. (이종오는 3단계로 나누고 있다) 그의 후흑학은 정말 기이하고 재미가 있다. 삼국시대에 천하를 나눈 조조와 유비를 후흑의 관점에서 새롭개 해석하고, 보잘것 없는 출신의 유방이 어떻게 성공하여 천하를 세웠으며, 그 힘이 산을 뽑는다는 초패왕 항우가 왜 실패하였는지를 낯가죽의 두꺼움과 뱃속의 시커먼 정도의 차이로 후흑의 학설을 전개하고 있다. 또 낯가죽은 철판처럼 두꺼웠으나 속마음이 시커멓지 못하여 결국 실패한 인물로 한신을 들고, 반대로 뱃속은 누구 못지 않게 시커멓지만 낯가죽이 두껍지 못하여 역시 실패한 인물로 범증을 꼽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史記가 「유방은 오똑한 콧날에다 천자의 상이고, 항우는 겹눈동자이다」라고 묘사하고 있을 뿐 도대체 두 사람이 낯가죽이 두꺼운지 얇은지, 또 속마음이 시커먼지 깨끗한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훌륭한 역사책이라 평하기엔 부끄러움이 따른다면서 사마천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이종오가 후흑학을 주창한 후, 수 많은 사람들이 제자를 자청하여 집앞이 성시(成市)를 이루었고 그들에게 후흑의 도를 전수해 주었다고 하나 정작 그자신은 얼굴이 두껍고 복심이 검지는 못했던 것 같다. 관청의 돈챙기는 자리에 있는 책임자에게 자신의 봉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는가 하면, 그 책임자가 될 뻔하다 취소되었을 때에는 집에 돌아갈 노자마져 떨어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후흑학에 구속되어 위신과 체면 때문에 생전에 후흑의 도를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매 번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마다 스스로「이렇게 하면 내가 후흑학을 실행한다고 사람들이 말들 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의 말처럼 후흑이 입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몸으로 입증시켜준 셈이다. 사실 이종오는 당시 손문의 반청혁명 회원이었기 때문에 잔재했던 봉건 유교사상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역설적으로 후흑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의 조상은 강한 민족성을 가졌고 엄격했다고 한다. 그의 증조부는 임종을 맞이할 때 수건을 가져오라고 해서 스스로 얼굴을 씻고 약간 비뚤어진 모자를 직접 손으로 바로잡은 후 탁자에 기대어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후손의 이종오가 25세가 되어 사상이 크게 바뀌게 되자, 그는 유교에 대해 불만을 느껴 공자를 존경하고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더 낫다고 속으로 생각하게 되어 그는 자신의 이름을「종오(宗吾)」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사회 곳곳에서 공자를 떠받드는 유학자들과 부딪히면서 그들의 사상에 정면 도전하고 사회구조를 역설적으로 풍자하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예컨대 '관직을 구하는 여섯 가지 요령'이나 '관리들의 일처리 비결' 등이 그것이다. 이종오는 인간이 본시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겉으로는 도덕과 인으로 포장하고 속으로는 후흑의 갖가지 기교를 부려 승리한 자들의 중심으로 역사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성인군자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는다. 삼대에 성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자를 제외하고 모두 제왕인 것은 그들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 복종함으로서 제왕중심적이 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아무리 고매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아무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없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제왕만이 성인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 제왕들이 죽간으로 된 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후세 사상가들이 자기의 학설을 주장하면서 개국 제왕들을 끌여들였기 때문에 고대 제왕들은 가만히 앉아서 남이 이뤄 준 명성을 누리며 성인소리를 들어왔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고대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우 임금이다. 그는 박애자의 모습으로 불리우지만 한비자의 눈에는 회계에서 제후들을 소집할 때 한 제후가 늦게 도착했다 하여 그의 목을 벤 우 임금이 엄격히 법을 집행하는 대법가였던 것이다. 송나라 유학자들은 털끝만한 작은 이치도 따지고 드는 우가 그들 학설에 딱 맞는 성리학자였다. 또한 잡다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에는 우가 도산씨라는 여우같은 여자와 결혼한 부잣집 도령으로 묘사되어 있고, 치수사업을 할 때 신을 부르는 모양이 손오공같고 봉신방의 강자아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종오의 안목으로 보자면 우 임금은 처음에 친부모를 잊고 원수를 섬기다가 그의 천하를 빼앗고, 결국 원수를 창오의 들녘으로 몰아 죽였으니, 그야말로 '후흑학'의 주요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러듯 이종오의 학설이 이단적이고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역사를 파악하고 있지만 후흑학은 후안무치의 흑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성공한 역사인물을 관찰했다는 점, 또한 인간의 내면을 냉철하게 꿰뚤어 보고 있다는 시각, 그리고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많은 인물들을 적절히 예를 들어 자기이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오랫동안 주목되어 왔다. 정치학자 최명(崔明)선생은 십여년 전에 「소설이 아닌 삼국지」라는 평전을 썼는데, 영웅론을 다루면서 이종오의 후흑학의 일단을 소개한 바 있다. 조조를 설명하면서, 여백사(呂伯奢)를 죽이고 자신보다 똑똑하다고 시기하여 재사 양수(楊修)를 죽이는 그 뻔뻔스럽고 시컴한 복심을 가졌기에 한 시대의 영웅으로 삼국의 역사에 크게 이름을 떨쳤다는 이종오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김시양(金時讓)이 쓴 인물평론집 부계기문(부溪記聞)에 나와있는 당나라 누후덕 형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쯤되면 가히 후흑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타면자건(唾面自乾)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최명선생의「후흑에 달통한 인물」을 하나 더 소개하자. "우리나라에도 후흑의 달인이 있었으니 조선초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황희 정승이다. 두 가비(家婢)의 사소한 다툼에 한 계집이 와서 전말을 하소연하니, 황 정승은「네 말이 옳다」 하였다. 잠시 후 다른 계집이 와서 하소연하니 정승은 이번에도「네 말도 옳다」하였다. 옆에서 황 정승의 정경부인이「아니, 대감, 이 말도 옳다, 저 말도 옳다 하시니 대체 뉘 말이 옳단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이번에도 정승은,「부인 말씀도 옳소」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황 정승의 복심은 누구에게도 싫은 말을 안하는 것이었다. 그도 후흑의 중요성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고금을 통하여 벼슬을 잘한 인물들, 명재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대개 누사덕이나 황희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누가 반론을 제기할 것인가? 그들은 한결같이 위로는 임금의 목에 있는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아래로는 부하들의 마음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불쾌해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웃으며 무사 안일을 능으로 삼는다. 뻔뻔스러운 흑심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물들이 옛날에만 있었단 말인가. 지금도 정치권에서 공무원사회에서, 사회조직체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면 누사덕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황희처럼 복심이 검은 인물들이 많이 있다. 필자가 이종오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그의 이론이 흥미롭고, 순자의 성악설에 따른 이기적이고 인간본성의 법칙에서 연원한 그의 학설을 전면 부정한다면 이 또한 위선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봉건 유교질서에 반대하여 역설적으로 빗댄 후흑학이 발표된 지 90년이 지난 지금, 중국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경제와 사회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이 책이 새삼 관심을 받고 많이 읽힌다고 하니 죽은 이종오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후흑학이 세상을 떠들석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을 즈음, 한 관리가 박백학(薄白學: 낯가죽이 얇고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란 글을 써 이종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말끝마다 도덕 운운하며 후흑학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후에 박백학을 주창하던 그 관리가 탐욕과 횡포한 사실로 인해 목이 잘려 성도성 공원의 기념비 위에 효시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후흑의 달인 조조와 유비] 옛날의 영웅호걸 가운데 가장 후흑한 인물이 삼국시대의 조조다. 그의 특출난 점은 저울질하기도 어려울 만큼 음흉하고 시커먼 뱃속에 있다. 그는 젊었을 때 대단히 의심이 많았다. 평소 누가 자신을 해하려하지 않나 의심하여 낮잠을 잘 때에도「나는 꿈을 꾸다 사람을 죽이는 수가 있으니, 내가 잠잘 때는 가까이 오지 말라」며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조조가 거짓 잠자는 척 하고 있었는데 마침 총애하는 신하가 몰래 접근하여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 때 조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칼로 찔러 죽여 버렸다. 당시의 권력자인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해 쫒기는 몸이 되었을 때 가친과 형제의 의를 맺고 지내던 여백사라는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여백사는 기뻐하여 가족들에게는 돼지를 잡아 대접하라 이르고 자신은 술을사러 집을 나섰다. 밤에 밖에서 칼가는 소리가 들려 조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의심하여 그 가족 모두를 죽여버렸다. 그런데 부엌을 보니 돼지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주인이 오기 전에 떠나 말을 급히 몰고 가던 중 술을 사가지고 오는 여백사를 만났다. 죄 지은 몸이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말로 둘러대고 떠나던 중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백사의 뒤를 쫓아가 단칼에 죽여버렸다. 이에 동행하던 진궁이 물었다. 「아까는 모르고 실수했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오?」 그러나 조조의 대답은 태연스러웠다. 「그렇지 않소. 나는 남을 저버릴망정 남으로 하여금 나를 져버리게 할 수는 없소 (寧我負人 毋人負我)」라고 대답했다. 조조는 공융을 죽이고, 양수를 죽이고, 동승, 동귀비를 죽이고 복완을 죽이고도 그 죄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황실의 태자와 황후를 죽이는 등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처럼 조조의 속마음은 시커멓고 음흉스러웠기 때문에 한 시대의 영웅으로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비를 보면, 그의 특출난 점은 보통 낯가죽이 두꺼운게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의리와 지조가 없는 기회주의자로 항상 변신이 끊임없었다. 여포를 의지하는가 하면, 조조에게 붙어 있고, 다시 원소의 품에 안기는가 하면, 유표 쪽에 기울고, 끝내는 숙적인 손권과 결탁하는 등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개의치 않았다. 유비는 이렇게 이리저리 쫓겨다니고 남 밑에 얹혀 살면서도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은 것은 물론 눈물흘리는 특기를 가졌다. 진퇴양난의 최후의 순간에 이르면 그는 꼭 통곡한다. 그 통곡은 상대의 감정을 부드럽게 녹일 수 있는 독특한 연민의 감정을 나타내었다. 그는 그러한 그 독특한 통곡에 의하여 어려운 국면을 유리하게 바꾼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유비의 영토는 대부분 모두 이 눈물 때문에 얻은 것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한 낯가죽이 가장 두꺼운 유비와 뱃속이 가장 시커먼 조조가 술을 주고 받으며 당대의 영웅에 대해 논할 기회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날카로운 손톱을 갈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감정은 전혀 나타내지 않고 서로 만면에 웃음을 띠며 술잔을 주고받았으니 흑심과 철면피의 심리적 대결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 말고도 손권이란 인물이 있는데 그는 유비와 동맹을 맺었을 뿐 아니라 처남 매부지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촉이 쇠퇴한 기회를 틈타 느닷없이 형주를 빼앗고 유비의 의제인 관우까지 죽였다. 그러고는 곧이어 촉나라에 화의를 청했으니 그의 시커먼 속마음은 거의 조조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는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웅을 자처하면서 조금도 양보할 줄을 모르고 맛서다가, 결국은 조조 아들 조비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스스로 신하되기를 자처했다가 얼마 안 가 위나라를 배신하였으니 그의 낯가죽 두껍기도 유비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유방의 승리와 항우의 실패]

역사상 많은 영웅 가운데 후흑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여 실패한 인물도 많다.

초패왕 항우의 예를 보자.

항우는 힘이 산을 뽑고 기운은 천하를 엎는 영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고 오강에서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그 실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한신의 말과 같이 '아녀자의 仁과 소인배의 혈기'만 있었기 때문이다.

아녀자의 仁이란 不仁을 보면 참지 못한다는 말인데 바로 속마음이 시커멓지 못하다는 데 있다.
홍문의 연회에서 항우와 유방이 자리를 같이 했을 때 항우가 단칼에 유방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항우는 후세의 사가들의 비난이 두려웠는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유방이 도주 하게 만들고 말았다. 바로 복심이 시커멓지 못하다는 증거다.

또한 강동의 자제 팔천 명을 전장에서 잃고, 다시 강동으로 돌아가 그들의 부형을 만날 면목이 없다고 하여 오강에서 자살한 것은 흑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도대체 잘난 사람의 체면이 다 뭐고 그 고매한 인품이 또 뭐란 말인가?
항우가 해하에서 패배한 뒤 만약 오강을 건너 재기를 다짐했다면, 천하가 누구의 수중에 돌아 갔을지 어찌 알겠는가?

소인배의 혈기란 사려분별을 잃고 전후의 사정도 없이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화근은 낯가죽이 두껍지 못한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진의 항병을 하룻밤 사이에 학살하고, 함양의 아방궁을 불태워 석달이나 타게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후흑에 있어서 그에 앞섰던 유방에게 패하고 만 것이다.

그러면 유방은 어떠한가.

史記에는 항우가 유방에게 단 둘이 겨뤄 우열을 가리자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유방은 미안한 기색으로 웃으면서 지혜를 겨룰지언정 힘겨루기는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유방이 '미안한 기색으로 웃는다'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태도인가? 힘으로 겨루면 항우를 당하지 못하므로 낯가죽이 두꺼워 뒤로 빼면서 체면을 가리지 않았다.

이 뿐이 아니다.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는 오히려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낯가죽이 두껍지 않은가.
또 초나라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 그는 수레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친자식을 세 번이나 마차에서 떠밀어 내고 자신의 생명만을 보호하려 했다.

천하를 통일한 후 목숨을 걸고 도운 일등공신 한신과 팽월을 아무 정의나 용서도 없이 죽어버렸다. 그러니 어찌 '아녀자의 인과 소인배의 혈기'를 지닌 항우가 뱃속이 검고 낯가죽이 두꺼운 유방의 심정을 꿈에나 짐작할 수 있겠는가?

이종오는 사마천이 「유방은 오똑한 콧날에다 천자의 상이고, 항우는 겹눈동자이다」라고 묘사 하고 있을 뿐 도대체 두 사람이 낯가죽이 두꺼운지 얇은지, 또 속마음이 시커먼지 깨끗한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훌륭한 역사책이라 평하기엔 부끄러움이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유방의 두꺼운 낯가죽과 시커먼 속마음은 거의 타고난 것이라 할 만하다.
낯가죽 두꺼운 것은 3대호걸의 하나인 장량에게서 전수받았다고 할 수 있다.
장량은 '다리 위의 노인'에게서 여러 번 신을 주워오라고 시험하여 그에게 낯가죽이 두꺼워지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초한시대에 낯가죽은 철판처럼 두꺼웠으나 속마음이 시커멓지 못하여 결국 실패한 인물이 있다.

바로 한신이다.

그는 매일같이 걸인행세하면서 밥을 구걸하고 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나가는 모욕(과하지욕)을 참을 수 있을 만큼 그 낯가죽 두껍기로 치자면 유방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속마음이 시커먼 점에서는 아직 훈련이 덜되어서 그런지, 그가 제나라 왕으로 있을 때 「유방에게서 독립하여 천하를 다스릴 뜻을 품으라」는 괴통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는 성공하여 역사에 존귀한 자리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옷을 벗어서 입혀주고 음식을 덜어준' 유방의 각별한 은혜에 마음이 걸렸는지 「남의 도움으로 옷을 입은 자는 그 사람의 일을 위해 걱정해야 하고, 남의 도움으로 먹고 사는 자는 그 사람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참수당하고 삼족이 모두 몰살당했다.
「항우는 '아녀자의 인과 소인배의 혈기'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라고 비꼬았는데 그 자신이 바로 이 점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후흑이 입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몸으로 입증시켜준 셈이다.

이와 반대로, 속마음은 누구 못지 않게 시커멓지만 낯가죽이 두껍지 못하여 역시 실패한 인물이 있다.

범증이 그다.

범증은 유방의 야심을 읽고 지금 유방을 제거하지 않으면 후일에 후환이 남을 것이라 예견하여 온갖 계략을 써서 유방을 사지로 몰아넣고자 했다. 범증 역시 속마음 시커멓기가 유방을 빰칠 정도였다.
그렇지만 낯가죽이 두껍지 못하여 화를 참지 못했다. 유방이 진평의 계책을 이용하여 항우와 범증을 이간질하여 항우의 의심을 받게 되자 범증은 화를 내며 물러나겠다고 청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다 홧병으로 죽었다.
이 모두 조그만 일을 참지 못하여 큰 일을 그르친 것이다.

조조와 유비는 후흑의 도를 터득하여 천하를 나눌 수 있었고, 한신과 범증 역시 한 쪽의 후흑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때를 잘못 만났다. 즉 두꺼운 낯가죽과 시커먼 속마음 양자를 모두 겸비한 유방과 함께 세상에 나왔던 탓으로 결국 둘 다 실패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신과 범증도 생전에 후흑의 한쪽 수단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왕후 재상 버금가는 지위를 얻고 한때나마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후흑학은 결코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늘이 인간을 만들 때 그 얼굴 속은 겉에서 볼 수 없도록 숨겨 두었다. 또 마음도 그 속이 얼마나 시커먼지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겉으로 보아서는 얼굴 면적이 손바닥만하고 속마음도 양 팔 길이도 안되지만, 그 내면을 살펴 보면 그 낯가죽 두껍기가 한도 끝도 없고, 컴컴한 뱃속은 그 밑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 공명, 처첩 궁실, 온갖 보화 금은이 모두 이 보잘것 없는 곳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후흑학의 3단계]

이종오에 의하면, 후흑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수련을 쌓음에 따라 1단계에서 2단계로, 2단계에서 3단계로 발전한다고 한다.
후흑의 1단계는 '낯가죽 두게가 성벽처럼, 속마음의 검음은 숯덩이처럼' 목표로 하는 단계이다. 얼굴 피부가 처음부터 두꺼운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종이처럼 얇다가, 수련의 공을 쌓음에 따라 점차 두꺼워져서 마지막에는 성벽처럼 두껍게 된다.

뱃속의 검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우유 빛을 띠다가 점차 회색에서 청색, 자색을 거쳐 마지막으로 숯덩이같이 새까맣게 된다.
이로서 후흑학의 초보적인 수련에 성공하게 되는데 이 1단계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겨우 기초적인 기량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비록 성벽처럼 두껍다고는 하나 대포 한 방에 무너질 수 있고, 뱃속이 시커멀 경우 얼굴빛이 혐오스러워, 모두들 그를 가까이 하지 않을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단계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제2단계는 '두껍고도 단단하고, 검으면서도 빛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수업을 쌓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급습하더라도 결코 당황하지 않고,떨지 않으며 침착하게 이에 대처해 나간다. 이종오는 유비를 이러한 대표적 인물로 꼽는다.
조조가 흑심을 가지고 영웅론을 빙자하여 유비의 마음을 떠보려 하였지만,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후흑에 능숙한 달인(達人)이 되면, 그것은 윤기없는 흑칠(黑漆)을 한 것처럼 보기에는 평범하나, 윤기없는 칠의 검은 색에는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호감이 가는 것처럼, 그 한량 없고 태연한 외모 속에 있는 검은 복심은 가려서 보이지 않고, 따라서 상대는 무엇인가에 현혹되어 결국은 그 손아귀에 말려들고 마는 것이다. 조조가 그 달인이며, 중원의 제후들이 모두 그 검은 복심에 오히려 현혹되어 그 휘하에 승복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단계로도 부족하다. 2단계에는 아직 모양이 있고, 색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잘 살펴 보면 쉽게 그 뱃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제3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나 형체가 없고, 뱃속이 검으나 색체가 없는' 경지이다.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후세인들이나 조물주라 하더라도 아무리 낯가죽이 두껍고, 뱃속이 검더라도 그것을 간파할 수 없고 또 두껍거나 시커멓다고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도달하기 매우 힘든 것이어서 그러한 인물을 역사속에서 찾기 어렵고 부득히 위대한 옛 성현들 가운데 찾아볼 수 밖에 없다.

이종오는 말한다.
「유가의 중용은 무성무취(無聲無臭)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그것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고, 불교의 수업은 보리무수 명경비대(菩提無樹 明鏡非臺: 보리수가 나무의 허상이 아님을 알고, 투명한 거울이 액자 속에 있는 거울의 허상이 아님)의 경지에 달하였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후흑학도 천고문외불출(千古門外不出)의 비전(秘傳)이므로 무형무색(無形無色)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끝이 될 것이다. 」

돌이켜 보건대, 삼대(중국 하,은 주나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공명을 떨친 수 많은 왕후 장상, 호걸, 성현들이 후흑학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月光狼 2004-03-13 18:24

수원객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깃꾼, 불한당, 깡패, 배신자, 도둑넘, 철면피 같은 넘들이 천하를 손아귀에 쥔다는 말이군요... 그럴까요? 단 두 인물만 들어봅시다. 고구려의 영웅인 호태왕, 연개소문도 후흑의 달인이었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궁금합니다... ^^; 그럼...

수원객 2004-03-14 09:48

소위 후흑학에 반대하여 박백학(薄白學: 낯가죽이 얇고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란 글을 썼던 중국의 한관리는 스스로 부정과 부패 탐욕과 횡포에 연루되어 목이 잘리고 사천성 성도공원의 기념비 위에 효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종오는 스스로 후흑학에 갇혀서 그가 매 번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마다「이렇게 하면 내가 후흑학을 실행한다고 사람들이 말들 하지 않을까?」라고 걱정을하였고 위신과 체면을 먼저 생각하여 후흑의 도를 실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 관청의 총무책임자에게 자신의 봉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는가 하면, 그 책임자가 될 뻔하다 취소되었을 때에는 집에 돌아갈 노자마져 떨어졌을 정도였다...." 라는 문구에서 보았듯이 후흑이 입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무지무지 어렵다는 이야그지요. 제가 이글을 소개한 이유는 박백(薄白)도 후흑(厚黑)도 모두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나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깃꾼, 불한당, 깡패, 배신자, 도둑넘, 철면피' 그런 놈들이 나쁜짓을 일삼는 무리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기준이 그렇기 때문 입니다. 즉, 선과 악의 기준 말입니다. 그러나 절대선, 절대악 이란 없다고 보는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천당갈 일 없듯이 나쁜짓을 하였다고해서 곳바로 지옥으로 떨어질 일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규범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이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우주적관점에서 보면 서로가 견제하며 균형과 질서를 이루고 있기때문에 이것은 둘다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선과 악을 통달해야 천하를 쥘 수 있다고 말하면 이해가 되겠지만 막연히 사깃꾼, 불한당, 깡패, 배신자, 도둑넘, 철면피 같은 넘들이 천하를 손아귀에 쥔다는 말은 아닙니다. 운명은 자기행위의 과정입니다. 지금이 가장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후흑을 공부해야합니다. 비록 저의 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느낀바가 있어 나머지도 마저 소개합니다. [관직을 구하는 6가지 요령] 이종오가 후흑학을 발표한 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학문은 심오하여 대학이나 중용같은 책을 읽은 것처럼 책을 읽고나서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실용적인 방법을 전수 해달라' 고 요청하여 그 자리에서 그들이 원하는 '관직을 구하는 요령' 등을 전수해 주어 그들의 요망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관직을 구하는 여섯가지 요령은 공(空), 공(貢), 충(沖), 봉(捧), 공(恐), 송(送)의여섯 자이다. (1) 공(空) 공은 한가하다는 것인데, 두가지로 나누어 첫째가 일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관직을 구하려는 자는 만사를 제치고 오직 관직을 구하는데만 전념해야 한다. 둘째가 시간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조급하게 굴지 말고 오늘 못 구하면 내일 구하고, 올해가 아니면 내년이 있다는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2) 공(貢) 이 글자는 사천지방의 속어로 권세에 빌불는다는 찬(鑽)자와 같기 때문에 들락거리며 아첨한다는 찬진찬출(鑽進鑽出)은 공진공출(貢進貢出)과 뜻이 같다. 즉 구멍이 잇으면 비집고 들어가야 하며,구멍이 없으면 송곳으로 뚫고라도 들어가야 한다. 즉 이 구멍은 돌파구인 셈이다. (3) 충(沖) 허풍떤다는 말인데 이는 말 재주와 글 재주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말로 하는 것은 일반적인 장소와 상사앞에서 하는 말을 구별해야 하고, 글로 할 때도 신문 잡지를 이용할 때와 편지나 진술서로 할 때를 구별해야 한다. (4) 봉(捧) 받들어 추켜세운다는 뜻으로 연극「삼국연의」에서 조조가 나타날 때 화흠(華歆)의 거동을 연상하면 된다. (5) 공(恐) 이는 공갈 협박한다는 뜻인데, 관직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데 어떻게 쉽사리 내주겠는가? 손발이 닳도록 수십만 번 추켜세운다 하더라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이것은 바로 공갈 협박하는 수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위에 있는 사람이건 간에 모두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급소를 찾아 살짝 찌르기만 하면 질겁을 하고 놀라서 당장 관직을 내줄 것이다. 따라서 공갈 협박과 아첨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공갈 협박을 잘 하는 자는 상대방을 치켜 세우면서 은연 중에 위협을 가한다. 옆 사람이 보기에 그가 상사 앞에서 구구절절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암암리에 급소를 찌르기 때문에 상사는 그 소리를 듣고 식은 땀을 줄줄 흘릴 정도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공갈 협박을 할 때 적당히 해야지 도가 지나치면 상사는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분개하여 맛설 것이다. 관직만 얻으면 됐지 시끄럽게 하여 상사의 밥그릇을 깰 필요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부득히한 경우가 아니면 공갈협박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6) 송(送) 이는 뇌물을 주는 것인데, 크게는 거금을 쥐어 주는 것이고, 작게는 저녁을 내거나 단란주점에서 한턱 내는 것이다. 뇌물을 받는 쪽은 임용권을 쥔 자와, 임용권은 없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이다. 위 여섯가지를 적절히 사용하게 된다면 임용권을 가진 자 쪽에서는 아래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그 자는 관리가 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부탁하였고(이는 한가지 일에만 매달린 효험이다), 나와 이러저러한 관계가 있고(이는 구멍을 잘 판 효력이다), 상당히 쓸모도 있으며(이는 허풍을 떤 효력이다), 나에게 무척 공손하고 겸손하다(이는 아첨을 한 효력이다). 거기다 그 사람은 그렇게 보여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관직을 주더라도 내 편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나중에 성가시게 된다(이는 공갈 협박을 한 효력이다) 그렇게 중얼대다 고개를 돌려 선반위에 놓여 있는 선물 꾸러미를 보고는 할 말이 없어졌다. (이는 뇌물의 효력이다) 이내 그는 붓을 들어 아무개에 대한 임명장을 써 내려갈 것이다. 이제 부임하게 되면 공무원의 여섯 가지 지침 사항을 그대로 실행토록 하라 [공무원의 여섯 가지 지침 사항] (1) 공(空) 이는 내용이 없다는 뜻으로 첫째, 서면상으로 보면 알듯 모를 듯 묘한 의미를 담고 있는 관청문서들이 많다. 끝까지 읽어 보아야 불현듯 내용을 알아차릴 수 있다. 둘째, 일 처리에서는 외관상 그야말로 유능한 공무원처럼 명쾌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제멋대로 일 처리하여 동쪽으로 가건 서쪽으로 가건 그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정세가 불리하면 그 길로 내빼버리면 되기 때문에 결코 자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2) 공(恭)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고 아양떠는 것인데 상사에게 직접하는 경우와 상사의 친척이나 친구 및 첩과 같은 주위사람들에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3) 붕(繃) 속된 말로 뻣뻣하게 군다는 말로, 첫째, 외관상 위엄을 갖춘 큰 인물이라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인상을 풍기도록 한다. 둘째, 어투로 보아 경륜을 갖춘 대단한 인물로 보이게 한다. 밥줄을 쥐고 있지 않은 상사에게는 뻣뻣하게 굴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아랫사람이 밥줄을 쥐고 있을 경우에는 얼른 태도를 바꿔 적당히 비위를 맞춰 준다. (4) 흉(兇) 내 목적만 달성할 수가 있다면 남이야 처자식을 팔아치우든 말든 알바 아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그 흉악함 위에는 반드시 인의도덕의 탈을 뒤집어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도 않은 원한을 사게 되어 중도에 좌절하는 비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5) 농(聾) 이는 귀먹은 듯이 처신하라는 말이다. 「남들이 비웃던, 욕을 하던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눈감고 못 본 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승진과 좋은 보직은 내 차지다.」 (6) 롱(弄) 돈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11가지의 요령이 모두 이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돈을 긁어 모으는 것은 뇌물을 주는 것(送)의 효용과 합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물을 주는 게 있기 때문에 후에 긁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적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어느 정도 재투자를 계속해야 하며, 그렇게 해도 절대 헛되지 않다. 성공만 하면 그 정도의 투자는 언제든지 회수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면 주저없이 긁어 모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