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져야 할 공공인의 역사의식

      
 
 필자가 사는 곳에 조그만 기차역이 있었다. 철도망이 발전하고 완행선이 폐지됨에 따라 작은 역사(驛舍)도 폐사 되었고, 철도는 뜯어내고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오래된 작은 역사는 아담한 동네 도서관이 되었다. 어느날 공원길을 산책하다 나는 도서관이 생긴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움을 느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가서 내가 쓴 "환단원류사'라는 역사 수필집을 가져와 기증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후, 말도 안돼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공무를 집행하는 어떤 젊은이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 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것이었다.

 도서관에 작은 일을 보는 사환은 책을 접수하며 책을 기증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이 책은 본관 도서관에 보내져 담당사서의 검토를 거쳐 발행 기간이 오래되었거나 음란 기타 유해성이 있는 책이라면 반송하게 되오니 선생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명함을 한장 건네고 집으로 왔는데, 한 일주일이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선생님께서 기증해주신 책이 반송되었으니 찾아가시라는 통보였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나 싶어 그런 결정을 내린 사서를 바꿔달라고 하니, 담당사서는 본관으로 가고 현재 자리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본관으로 전화했다.
 
 내가 그 책을 쓴 저자인데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서도 채택된 책인데 귀 도서관은 무슨 이유로 책을 반송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전화 받으신 분이 좀 알아보고 전화드리겠다고 했다.
 
 한 10분 정도 지나서 도서구입 담당 사서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께서 기증하신 책은 본관에 접수되지 않았으며 그 내막을 알아본 결과 동네 도서관에서 담당사서가 자의적으로 검토하고 본관에 알리지 않고 반송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담당사서가 직접 전화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걸 자원봉사자에게 시켜서 기증자에게 반송 되었다고 전화해서 될 일인가? 말이 반송이지 나에게는 검열에 걸렸다는 뜻처럼 들렸다.
 
 본관 담당 사서관께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사고라면서 정중하게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기증해 주면 본관에 비치하겠다고 했다.
 
 나의 생각대로 한다면 그런 실수를 한 동네 사서와 직접 통화하고 꾸짓고 싶었지만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서관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행여나 직장에서 어려운 일을 당해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싶어 그냥 오해가 풀렸으니 용서하겠다고 하였다. 기분이 상했으니 책을 다시 기증하는 일은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책을 반송한 이유가 더 충격적이었다. 한자(漢字)가 너무 많아 질렸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공무원의 태도에 나는 다시한번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잘 모르면 본관에 정식으로 보내 검증을 받아야 할 일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귀중한 책을 반송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책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책은 한자(漢字)가 많긴 하지만 모두 (괄호)처리 했고 정음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우리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모두 읽을 수 있는 책 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젊은이는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관에 혐오를 느끼는 부류에 속할 것이다. 이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최근에 KBS 역사포털 홈페이지에서 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한 보름 이상 걸렸던 것 같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왜국이라 하며 끝까지 조롱하고 무시해버리는 조선의 관료들에 그 무지막지한 오만심에 치가 떨렸다. 나라가 곧 망할 지경인데도 자신들의 안위만 일삼는 관료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며칠 전에 KBS에서 처음 발굴한 이승만 전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직후, 일본으로 망명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전보를 쳤다는 소식이 있었다. 조선 건국후 대한민국정부까지 그리고 현재까지 역사의식 부재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도를 넘어 대한민국이 점점 세계의 조롱꺼리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이 나라가 얼마나 축복받은 나라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우리의 말과 글을 정리하여 세계 어느 민족도 따라 올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영광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 후로 공부하는 것은 오로지 입신 영달을 위한 것이 되었으며, 내가 살기 위해서는 조국도 이웃도 스승도 없는 무개념의 인사들만 꽉차게 된 나라가 되었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벌써 망해서 없어지거나 이웃 나라들의 노예국가로 전락되었을 것인데, 이렇게 버티게 해주는 저력의 원천은 우리 민족이 하늘 백성이기 때문이다. 정녕 하늘이 이 나라를 돌보지 않았다면 이순신, 세종대왕 같으신 분이 이땅에 태어 날 수 있었겠는가? 

 모두가 망할 짓만 하는데 그나마 이렇게 버티고 나가는 것은 역사 의식과 애국심이 투철하고, 검소하며, 법을 잘 지키는 소수의 양심 있는 선비들이 대한민국의 혼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망할 짓만 하는 인사들은 자기하고 싶은데로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다가 궁지에 몰리면 이들 대한민국의 혼을 지키고 있는 선비들에게 온갖 감언이설로 다가가 그들을 회유하고 그들을 방패막이로 삼고 뒤에 숨어 조정하려고 하며 입신영달, 기득권을 계속 유지시키고 자손들에게 물려주려고 아둥바둥 치는 것이 현실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자가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연예인이 되면 그 자식도 연예인이 되고, 정치인이 되면 그 자식도 정치인이 되고, 거지가 되면 그 자식도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는 세상이 대한민국인데 어찌 망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겠는가? 

 벌써 망하고 없어졌을 대한민국을 그래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하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불가사의한 일을 밝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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