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목경(45), 대중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하지만 국내 블루스 팬들에게 그는 ‘에릭 클랩튼’ 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다. 지난 20년 동안 묵묵히 ‘돈이 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한 그에게 최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사진] 김목경씨가 뽑은 자신의 주제가는 <거봐, 기타치지 말랬잖아>라는 곡이다.(위)/김목경씨는 "자신의 감성에 잘 맞아서" 연주나 녹음에 늘 팬더기타를 애용한다고 한다.

미국 멤피스에서 열리는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 2003’(2003년5월2일~5월4일)에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초청받아 3차례의 단독공연을 하기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블루스의 신’ B. B킹, ‘포크송의 아버지’ 밥 딜런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이 이 무대를 거쳐갔고 올해 공연에도 조 코커, 윌리 넬슨, 스티브 윈우드, 쉐릴 크로우, 지지탑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연이어 열릴 예정이다.

미국 공연에 앞서 오는 26일과 27일에 대학로 동덕여대 예술센터에서 있을 국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김씨를 공덕동에 있는 한 음악스튜디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블루스의 본고장인 미국의 대형 페스티벌에 초대된 인연은?

그쪽에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 블루스 뮤지션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블루스 가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사이트가 화려해서 그런지... (웃음) 내가 뽑혔다.

초청할 의사가 있다는 연락을 듣고 내 음반 두장을 보내줬더니 그쪽 사람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나를 인터뷰하고 돌아간 후 초청했다.

원래 나 말고도 락 밴드도 한 팀 정도 더 초청하려 했으나 나만 가게 됐다.

미국 공연을 앞둔 기분은 어떤가?

처음엔 별로 안 떨렸는데 페스티벌에서 내 ‘백밴드’를 할 사람들이 내가 LP로 음악을 들으며 동경하던 ‘블라인드 미시시피 모리스’라는 걸 알고부터는 조금씩 떨리고 있다.

내가 진짜로 에릭 클랩튼과 동급으로 대접받다니 좀 놀랍기도 하다.(웃음)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블루스 하면 우리나라 ‘창’ 같이 느리고 지루한 음악으로 아는 젊은이가 많다.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블루스는 쳐지고 느린 음악이 아니다. 음악은 장르별로 빠르고 격렬한 곡도 있고 시대에 따라 느린 곡이 유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색깔이 블루스음악에는 담겨 있다. 때론 격렬하고 때론 부드러운 것이다.

처음 블루스에 빠진 계기가 있다면?

옛날에는 정식으로 절차를 거친 라이센스 음반이 귀해 조악한 녹색표지의 빽판(불법음반)으로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여러 블루스음악인을 모아놓은 편집음반을 우연히 들었고 계속 그런 음악을 찾아들으며 자연스럽게 연주도 하게 됐다.

궁금해서 그런데, 그 ‘빽판’은 외국 편집음반을 베낀 것이었나?

아니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이판저판 짜깁기를 한 거다. 유명 블루스기타리스트들의 곡이 앨범에 가득 들어 있었다.

대중에겐 故김광석의 히트곡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원곡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실이 기분 나쁘진 않은가?

사실 그 곡은 영국에서 활동을 할 때 건너집의 두 노인의 쓸쓸한 모습을 보고 한국적인 정서를 실어서 만든 곡이다. 누군가가 내 곡을 유명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곡은 하나의 작품이다.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부르면 그 작품의 또 다른 맛이 있다.

나도 내 노래를 그런 색다른 느낌으로 듣고 싶었다. 김광석이 직접 전화해서 녹음하고 싶다고 하기에 하라고 했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계속 (방송에) 노래가 나와 저작권료나 많이 받으면 좋겠다.(웃음)

자신의 음악 인생에 전환점이 있다면?

80년대 영국에 가서 공연하고 그쪽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내 음악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특히 같이 밴드 활동을 한 레이 하이우드 (Leigh Highwood)라는 키보드 주자가 많은 영향을 줬다.

공연 중에 내가 즉흥연주를 하다 길을 잃으면 살짝 리드를 해주던 동료이자 스승 같은 친구다. 그 친구를 만나 내 기타실력이 확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데 아마 나를 무지 대견하게 여길 거다. (웃음)

특별히 음악을 하기 위해 영국행을 택한 이유가 있나?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갔다. 블루스가 탄생한 것은 미국이지만 이를 꽃 피우고 세계로 전파한 것은 영국이었고 에릭 클랩튼의 고향이 영국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영국 가수들이 본 고장인 미국보다 더 ‘블루지’ 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영국은 미국 같은 스타일의 대중음악이 없었다. 5~60년대 블루스를 받아들이며 처음 대중음악이 성장을 했는데 ‘비틀즈’나 ‘롤링스톤즈’도 클럽에서 공연하던 초기에는 블루스로 시작했고 모두들 미국 블루스 곡을 카피하고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다 보니 미국 보다 음악적으로 더 성장해 버린 것이다.

참고로 지금 유명한 블루스 뮤지션들도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이 옛날 블루스 연주자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선배들의 음악을 살짝 베낀 후에 자기 것으로 다시 재생산을 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공연할 때 느낀 점이 있다면?

사실 우리는 아직 그들보다 한 수 아래다. 안타깝지만 인정을 해야 한다. 그쪽 사람이 장구를 우리보다 잘 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앞으로 20대의 어린 연주자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서 배우고 익히면 그들과 같은 레벨이 될 것으로 본다.

블루스 음악이 대중음악에서 갖는 중요성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쉽게 말하면 블루스가 없이는 대중음악의 실질적인 발전이 있을 수가 없다. 백만장 팔린 가요가 한 발짝만 외국으로 나가면 한 장도 안 팔리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런가 하면 현재 세계음악시장의 80~90%는 미국이 쥔 상태다.

물론 그 안에는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이유도 있겠지만 ‘블루스’라는 단단한 뿌리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위에서 락에서 랩까지 여러 장르가 이어진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팝(대중)음악은 블루스가 베이스로 깔려야 귀에 익숙하게 들리는 것이 된다.

영국이 미국의 음악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언어적인 문제도 있지만 미국보다 더 블루스에 심취한 음악인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에도 그쪽 사람들이 국내 락 밴드도 한팀 정도 초청하려고 직접 와서 리서치를 했으나 포기한 이유가 국내 밴드들이 ‘블루스 베이스드’가 안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계속 블루스를 고집한 것은 의무감 때문인가?

의무감은 전혀 아니다. 내가 이 음악이 좋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행복하고 은혜로우니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다. 음악을 좋아하다 블루스라는 ‘덫’에 걸린 것이다.

블루스를 ‘악마의 음악’이라고도 하는데 한번 빠지면 못나오는 장르라는 뜻이다. 서구 대중음악계의 대가들도 여러 장르로 활동하다 결국 블루스로 ‘회귀’한다. 최근 유행하는 여러 음악장르도 그 끝에는 신기할 정도로 ‘블루스'가 기본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 분야에서 ‘선두’가 된 입장에서 연습량이나 노력에 대해 말한다면 ?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다. 난 매일 기타를 친다. 잠자리 옆에 바로 기타가 놓여 있다. 텔레비전 보면서도 계속 치기도 한다. 늘 손에 닿는 거리에 기타를 놓고 친다. 하루도 기타를 안친 날은 없다.

음악인으로서 실력을 쌓은 비결이 있다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컨츄리, 락 등을 골고루 들었다. 그랬기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같은 곡도 나온 것이다.

기타리스트 입장에서 게리 무어는 어떤가?

그의 기타도 참 좋은데... 굳이 따지자면 클랩튼이 자연스런 소리라면 게리무어는 악세사리를 많이 쓴다. 나는 연주 때 자연스런 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댄스가수나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어린 가수들에 대한 느낌은?

댄스나 힙합을 하는 사람은 문제가 없다. 내가 블루스 음악을 하는 것과 같은 열정으로 한다고 믿고 싶다. 책임은 미디어에게 있다. 현재 우리나라 미디어는 음악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후배 음악인중 기대되는 사람은?

‘블루스 베이스드 뮤지션’을 뽑는 것이 빠르겠다. 신대철(작곡가 신중현씨 아들)은 블루스를 정확히 알고 있는 젊은 음악인이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최이철과 한상원등도 블루스가 기본으로 깔려 있는 음악을 한다.

음악활동 중에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법에서 아쉬움은 없었나?

매니저도 있고 소속사도 있으면 방송활동도 더 많이 하고 편하게 활동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진짜로 ‘음악’에 반한 것이라 더 좋다. 그리고 최근엔 팬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인다.

TV 출연 섭외는 왜 안 오는 건가?

나도 모른다. 왜 안 오는 걸까? (웃음)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중보다는 미디어에게 할 말이 있다. 대중들을 천재나 바보로 만드는 것이 TV다. 방송국 분들이 조금만 대중문화를 생각한다면 광고같이 돈 되는 일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방향으로 나가 주기 바란다.

대중음악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블루스 음악이 전혀 소개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최소한 세상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는 공중파 방송들이 소개를 해 줘야 한다.

자신의 숨은 곡 하나를 추천한다면.

연주곡인 <외로운 방랑자>를 꼽고 싶다. 3집에 들어 있다. 혼자서 블루스를 연주하는 외로운 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곡이다. 그리고 아직 녹음은 하지 않았지만 다음 앨범에 들어갈 <경 블루스>도 괜찮은 곡이다.

4월 하순에 있을 공연의 의미는?

공연 제목을 ‘GOING TO MEMPHIS’로 정했다. 미국 공연에 팬들과 다 같이 갈 수는 없으니까 (웃음) 국내에서 팬들에게 같은 공연을 듣고 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셈이다. 아마도 그 어느 때 보다 블루스 음악에 충실한 공연이 될 것 같다.

끝으로 자신의 노래 중에 스스로를 나타내는 주제가를 고른다면?

공연에서는 자주 불렀고 다음 앨범인 5집에 취입할 예정인 <거봐 기타치지 말랬잖아>라는 곡이 있다. 내 삶이 그 노래의 가사 그대로다. 이런 가사다.

기타를 치면 얼마나 돈을 벌까?
한 푼도 없네. 나는 그냥 밥만 먹고 살았네···
기타를 치면 얼마나 유명해 질까?
아무도 모르네. 히트곡이 하나도 없다네···
기타를 치면 얼마나 사랑을 받을까?
모두가 도망가 버렸네...

‘GOING TO MEMPHIS’ 김목경 공연문의 : 02-3272-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