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한대수 VS 이지환
      글 : 이지환(가슴네트워크) / 사진 : smooth

이지환 : 새로 시작한 두 가지 일이 있다고 하는데.

한대수 : 내가 라디오 디제이를 하게 되었다. 라디오 디제이는 그냥 음악만 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른 세상이더라. 상당히 준비과정이 많고, 음악을 트는 것뿐만 아니라 말을 이끌어가는 부분이 상당히 힘들다. 요즘 공부하며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딸을 가지게 되었다. 24시간 막노동이다.(웃음) 아이가 생기니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많은 기쁨을 주는 동시에 많은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

이지환 :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당신의 1, 3집이 선정 되었다.

한대수 : 나는 음악을 열심히 했고, 항상 최고의 음악가라고 생각하는 분들과 함께 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 굉장히 고맙다. 그런데 사실상 내가 만든 다른 음반들도 다 양호하다. 어느 시기에 그 음반들도 이해가 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이지환 : 본인이 직접 2장을 선정한다면.

한대수 : 나의 모든 음반들을 다 좋아한다. 내 자신이 음악을 발표할 때 좋다고 생각하니까 발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지환 : 1968년 음악다방 '세시봉'에서의 첫 무대를 얘기하면.

한대수 : 처음 음악 활동을 할 때 10대 후반에 만들었던 노래를 불렀다. 1, 2집이 거의 다 작곡이 된 상태였다. 3집도 부분적으로는 작곡 되어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사실상 이미 대부분의 곡들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흥분된 상태였다. 하지만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 음악가이면서도 완전히 아마추어로서 아무런 음반 계약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관객들은 일단 나의 겉모습에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긴 머리와 청바지 통기타 들고 음악 하는 그 모습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놀라움을 보였다. 음악은 귀에 안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많이 답답해했다. 나는 열심히 음악을 하는 사람일 뿐인데 음악은 인정을 안 하고 긴 머리를 가졌다고, 히피라고만 얘기하니 많이 슬펐다.

이지환 : 지금 들어보면 그리 이해 못할 음악도 아니었을 것 같은데.

한대수 : 시대적으로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때는 한국이 가난한 나라에서 한 10위쯤 할 때였다. 거꾸로 지금은 부자나라에서 10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당시는 그렇게 가난했다. 문화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을 때였다. 무조건 색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대중들은 내 음악에 대한 반응이 별로 없었다. 일부 대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내 음악이 전혀 전달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TV 출연도 하고 남산 드라마 센터에서 공연도 했다. 드라마 센터라고하면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정도 되는 장소인데, 당시 내 음악을 들은 대학생들에 의해 성사가 되었다.

이지환 : 처음부터 포크 음악을 할 생각이었나.

한대수 : 난 음악의 장르는 별로 구분을 하지 않는다. 1968년도 한국에 들어와서 음악을 했는데 나와 같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세션 플레이어라든지 음악인들이 별로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통기타와 하모니카 같은 것들뿐이었다. 1989년 3집 [무한대] 음반작업을 할 때에는 많은 음악인들이 한국에 있었다. 손무현, 김영진, 김민기, 송홍섭 같은 훌륭한 분들이 있어서 사운드가 좀 더 풍만해 졌다. 그런대 난 항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보다도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다. 1, 2집 당시 한국에 록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그래서 나 혼자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지환 : 1974년 1집 [멀고먼 길], 1975년 2집 [고무신]을 발표한다.

한대수 : 군 제대하고, 다행히도 김민기가 '바람과 나', 양희은이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말하자면 유명한 작곡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음반을 만들 수가 있었다. 대중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했던 거다. 하지만 그 두세 곡들만이 방송을 타면서 히트가 된 것이다. 음악은 방송을 타지 않으면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지가 않고, 사람들의 반응이 있을 수가 없다.

이지환 : 1, 2집 음반을 들어보면 클래식의 영향도 많이 느껴진다.

한대수 : 내 할아버지가 클래식 음악가이기도 했고 제일 처음 들었던 것들이 베토벤, 바그너, 모차르트, 말러, 쇼스타코비치 등이었다. 어릴 적 항상 집 안에 우렁차게 클래식 음악이 나왔기 때문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향을 받으며 계속 듣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몸에 배인 것 같다. 어머니 또한 피아니스트였다.

이지환 : 2집 음반이 체제 전복적이란 이유로 한국에서의 음악활동이 완전히 차단된다. 전혀 예상을 못했나.

한대수 : 나는 음악가로서 최고의 음악을 하는 것 밖에는 모른다. 이걸 좀 역사적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당시는 너무 가난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를 어느 정도 중위권 국가로 만들어야겠다는 정부의 야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전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시대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창작활동들이 대중들에게 자극을 주니까. 내 음악이 꼭 그랬다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그러한 분위기였다. 당시 정치적이고 체제 저항적인 음악을 하겠다는 자의식은 전혀 없었다. 난 그저 나 자신의 음악을 한 것뿐이었다. 말하자면 영국의 도노반이나 미국의 밥 딜런, 캐나다의 레너드 코헨과 같이 그저 내 노래를, 내가 10대 20대에 겪었던 사랑과 좌절을 노래했을 뿐이다. 그 시절 연애를 할 때 얼마나 기쁜가, 아름다운 여인을 품속에 안을 때의 아름다움. 그런 것들을 표현했을 뿐이다.

이지환 : 그 후 뉴욕으로 건너가 하드록 밴드 '징기스칸'을 결성한다. (※ Genghis Khan은 한대수가 1977년에 뉴욕에서 결성한 록밴드다. 당시 음악들이 한 대수 박스셋 [The Box]에 실려 있다.)

한대수 : 난 항상 사는데 있어서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한 인간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뉴욕을 가보니까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이 인기가 있었는데, 동양에서 나온 록스타가 아무도 없더라. 그래서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동양에서 나온 록스타가 하나도 없다. 조직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록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음반사와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돈나가 오늘 음반을 냈다 하면 그 다음날 홍콩과 서울에 음반이 다 깔린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서 음반을 낸다 해도 그 음반은 다음날 뉴욕에 깔리지 않는다. 조직체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인 힘이 없으니 안 되는 것이다. 그 조직체를 조종하는 것은 미국인 중에서도 유태계이다. 그 조직체에 도대체 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유태계가 아니면 불가능 했다. 유태계의 힘이 없다면 음악을 세계 시장에 발표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징기스칸'이란 밴드로 Trude Heller, CBGB등의 뉴욕 유명 클럽에서 공연을 했는데,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곡 자체도 훌륭했고, 내가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고함을 막 꽥꽥 지르니까 상당히 좋아하더라. 그러나 그것이 음반 계약이 되어 전 세계에 풀린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완벽히 실패 했다.(웃음)

이지환 : 한참의 공백 후, 1989년에 3집 [무한대]를 발표한다. 전부 70년대 작곡한 곡들이었나.

한대수 : 70년대도 있고 80년대도 있고 그렇다. 'One Day', 'If You Want Me To', '무한대' 이런 곡들은 80년대에 만든 곡들이다. 송홍섭씨가 거의 반 정도 편곡을 해 주었다. 편곡을 아주 웅장하게 잘 해주었다. 훌륭한 음악인이다. 그 외에도 손무현, 김민기, 김영진 등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지금도 그러한데, 우리 밴드의 멤버들은 다 젊은 분들이다. 당시 젊은 세대의 감각이 프레쉬하고 좋더라. 내가 생각지 못했던 좋은 아이디어도 생기고.

이지환 : 3집까지가 대부분 이미 만들어진 곡들을 작업한 것이었다면,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보여준 것이 4, 5집 음반이다.

한대수 : 난 음악이라는 것은 실험정신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재즈 뮤지션인 잭 리와 이우창을 뉴욕에서 만났는데, 이들과 함께 재즈적인 부분을 시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에야 한국에도 재즈가 보편화 되었지만, 당시엔 관심도 지식도 없는 상태였다. 이런 음악도 한번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던질 필요가 있었다. 실험정신으로 해본 것이다.

이지환 : 4집 [기억상실]의 수록곡 '지하철', '기억상실'에서 당신은 작곡이 아니라 구상이란 형태로 참가했다.

한대수 : 그렇다. 재즈란 것은 즉흥적인 것이니까 기본적인 리듬섹션과 코드진행이 밑에 깔리면 즉흥연주가 된다. '지하철'이란 곡의 경우 지하철의 고독한 느낌을 인생의 희노애락으로 한번 표현해 보자 했다. 방향을 잡아주면 멤버들이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제대로 음악에 반영이 되긴 했는데, 시기적으로 좀 일렀던 것 같다.(웃음)

이지환 :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나.

한대수 : 현대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면 나는 존 케이지, 구스타프 말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 말러, 그 사람도 워낙 추상적이라 아직도 클래식계에서 제대로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벨라 바르토나 라벨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음악이란 것은 자기가 혼자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물줄기가 죽 흐르면 물의 방향을 약간 바꾸는 것이다. 물 자체를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 그러면서 발전해 나간다. 클래식계도 그렇고 재즈도 그렇고 록도 그렇고. 서로 전반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약간의 보탬을 받는 것이다. 난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한다. 그러면서 재창조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가가 마찬가지이다.

이지환 : 1999년 한국에 돌아오면서 음악 인생에 대한 정리 작업을 시작한다. 2000년 8집 [Eternal Sorrow]를 내면서는 스스로 마지막 음반이 될 것이란 말도 했다.

한대수 :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 중에서도 고등동물. 소나무로 안 태어나고 돼지로 안 태어나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동물의 제일 문제가 뭔가 하면, 물리적으로 제한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도 노후 되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창의성도 한계점이 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봐서도 50세 이후에는 창의력이 있는 예술가가 몇 안 된다. 계속 창작 할 수 있는 사람이 그야말로 극소수이다. 피카소가 그래도 마지막까지 창작은 한 경우인데, 피카소의 마지막 작품은 연필로 그린 낙서였다. 낙서 중에서도 포르노. 포르노를 실컷 그리다가 죽었다. 왜냐하면 페인트 붓을 잡을 능력은 없어졌으니까. 우리 인간은 동물이다. 당시 내가 50세 되었을 때, 창의성이란 게 제한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지환 : 제대로 된 음악적 평가를 후대에서라도 안겨주고 싶은가.

한대수 : 물론 내가 살아 있을 때, 내가 만든 모든 음악이 대중들의 사랑과 이해를 받길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음악이란 것은 특히 시간이 걸린다. 음악 자체에 익숙해져야 하고, 주로 창작의 고통인 창작자의 고통과 대중들의 고통, 그리고 경험이 비슷해야 한다. 그것이 일치가 되어야 코드가 맞는 것이다.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내가 살아있을 때 인정을 못 받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음악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지환 : 한 인터뷰에서 5집 [천사들의 담화]의 수록곡 '침묵'을 자신의 최고 곡이라 했다. 어떤 의미인가.

한대수 : '침묵'이란 곡은 미안하지만 존 케이지한테 좀 훔쳤다.(웃음) 근데 이런 말이 있다. 아마츄어는 남의 예술품을 빌리고, 프로페셔널은 남의 예술품을 훔친다. 내가 사실상 존 케이지의 작품을 훔친 것이다. 요즘은 음악이 너무 범람하고 있다. 길거릴 걸어가도 음악이 나오고 구둣가게에서도, 생선가게에서도 음악이 나온다. 애인이랑 커피를 조용하게 마시면서 속삭속삭 사랑을 하고 싶은데, 또 음악이 크게 나오고. 음악이 너무 많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침묵이 또 음악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묵 그 자체를 그냥 녹음했다. 음악이란 것은 귀를 즐겁게 해주는 건데, 침묵도 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 그런 컨셉이었다.

이지환 : 70년대에서 비해 지금의 음악 환경은 많이 좋아졌나.

한대수 : 환경이 똑같이 악조건이다. 70년대엔 너무 가난했고, 지금은 테크놀로지가 너무 발전해서 음악가들이 먹고 살 방법이 없다. 과거엔 음반을 판매해 가지고 1, 2년 버텼는데, 지금 음반판매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음악만으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된 것이다. 지금 음악가로서 제일 고민이다. 음악가로서 생존하는 방법이란 것이 모델이나 연속극, 이런 것들이다. 음악으로서 생존할 수가 없는 상태이니까, 음악의 수준이 자꾸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지환 : 대중의 취향이 변한건가. 아니면 음악 사업가들이 대중의 미묘한 욕구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가.

한대수 : 둘 다 아주 정확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구소련 몰락 후, 전 세계가 완벽히 자본주의화 되고 나서 부자들은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뱅이는 더 가난뱅이가 됐다. 지금은 음악가들이 이 부유층에게 광대 역할만을 하는 것이지 대중에게 어떤 관념을 주는 역할은 자꾸 없어지는 것이다. 음반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몰락하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된 우리나라도 심각하지만 영미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라디오헤드' 같은 그룹은 음반사 계약도 안하고 자기 새 음반을 인터넷에서 공짜로 풀었다. 어차피 판매가 안 되니까. 그렇게 음악을 홍보해서 공연을 보러 와 달라는 것이다. 밴드들이 여러 가지로 머리를 쓰고 있다. 과연 어떤 형태로 음악을 계속하면서 생존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음악가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또한 워낙 6, 70년대가 음악의 르네상스, 즉 황금시기였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음악에 대한 고귀함을 모르는 것 같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것이 역사의 흐름인 것 같다.



이지환 : 지금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 중에 당신처럼 음악에 자신의 진심과 사상을 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 대책은.

한대수 : 간단히 말해 대책은 없다.(웃음) 홍대에서 기타 들고 찾아오는 음악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에게 음악 하지 말라고 한다. 꼭 하고 싶으면 하되 그것을 가지고 명성이나 화폐, 생활을 보장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따로 마련하라고 한다. 내가 국내 유명 음악인들과 협연도 하고 음반도 함께 만들고 했는데, 한 가지 재밌는 얘기가 있다. 롤라 피프라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기타리스트인데, 그 분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랬다. " 때이다.

이지환 : 당신의 음악은 대부분 슬프거나 고통스럽다.

한대수 : 난 음악이란 고통이 있어야만 나온다고 생각한다. 난 고통 속에서 살았고, 전반적으로 우리 인생을 볼 때 99%가 고통인 것 같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해결책이란 것이 다 고통이다. 그것이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밑에서 지배당하는 고통.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이 최상의 3%, 수퍼 리치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제도 밑에서 우린 항상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 이다. 사랑에 깊이 빠져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니까, 그 아름다운 사랑에 완벽하게 비례해서 또 고통을 받는다. 사는 그 자체가 고통이니까 음악이 고통일 수밖에 없고, 또 사람들은 고통이 있는 음악을 즐긴다. 발라드가 뭔가. 슬픈 거 아닌가. 음악뿐 아니라 미술 조각 영화도 마찬가지로 다 고통이 바탕이 되는 거다. 인간은 해결할 수 없는 그러한 인생이란 큰 문제점을 안고, 과거의 쓰라린 기억과 고통을 지고 사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인생을 가지고 살아라 하는, 이터널 프라블럼(영원한 문제)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의 환희가 있다면 그것은 순간적인 것일 뿐이다.

이지환 : 당신은 누구보다 자유롭기를 열망한 만큼, 큰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그럴 가치가 있었던 것 같나.

한대수 : 가치 하나도 없지만 살아있으니까 살아야지. 왜냐하면 우리에겐 생명이 주어진 것이고 1%라는 것의 의미가 있으니까. 그 1%를 위해서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때론 너무 날씨가 좋고, 때론 너무 아름다운 여인과 손을 잡고 밥을 같이 먹으며 길을 거닐 때, 그 순간은 또 말할 수 없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 것 같다. 종교란 기본적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한 것이다. 자기 혼자서 하늘과의 대화하는 것. 그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수단이다. 두려움과 고통을 없애고 위로를 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종교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종교는 문제가 많다. 그건 비즈니스이다. 난 나 홀로 자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했다.

이지환 : 지금도 창작을 계속하고 있나.

한대수 : 창작 활동은 계속하는데, 우린 물리적으로 동물이다. 다시 말해서 난 지금 뇌세포가 없어지고 있다. (웃음) 뿐만 아니라 남자로서의 역할도 없어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뇌세포가 없어지고 있어서 창작 활동이 안 된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록이든 클래식이든 끝까지 늙어 죽을 때까지 창작을 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믹 재거 보고 너 최고다 그러지 않나. 아직도 로큰롤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롤링 스톤즈 요즘 음악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 예전처럼 그렇게 창작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믹 재거가 술도 안 먹고 마약 안하고 매일 조깅하면서 록큰롤 한다는 것은 또 위대한 것이다. 실제로 음악가로서 50세 넘은 후에 상당한 창작을 한 사람은 몇 없다. 앞으로 열심히 해 온대로 하겠지만, 딸 양호가 생겼으니 양호가 우선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최전선에 서서 음악을 안 하더라도 지금 현재 하고 있는 디제이 일이라든지, 그런 간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육체적으로 능력이 없고 창의력이 없어진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지환 : 딸 양호가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가.

한대수 : 일단 건강하고 키도 크고 하니까 미인이 될 것 같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웃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내가 열심히 뒷받침 해주겠지만, 가능하면 음악은 안 했으면 좋겠다. 음악이란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니까. 아내 옥사나가 음악은 고통이 바탕이 되는 것이니 양호는 음악가가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기쁜 가정을 꾸려 줄 것이니 음악가가 될 가망성은 없다, 걱정 말라 하더라. 그런데 또 알 수가 없지.

이지환 :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한대수 : 대중문화가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창의적인,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그와 나눈 짧은 대화. 난 뒤늦게 같은 질문과 답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음악은 사실 그 사람이 죽어야 제대로 들려. 살아 있는 동안은 사람들이 질투를 하거든. 소설가 앨런 포우도 엄청나게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그런데 작품은 기가 막히잖아? 참, 기자 양반이 내 박스셋을 가지고 있다고 했나? 아, 이 사람 참 양호한 사람이구만! 으허허허허..." 영원한 청년의 영원한 고독은, 이제 겨우 사십 해를 넘겼을 뿐이었다.

장소 : 신촌 한대수 자택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