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롹의 진실은 진실을 표현하는 그 자체에 있다.

거짓과 음모, 욕설이 난무하는 롹은 생명을 잃은 것이다.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롹이요, 롹커의 사명이다.     < bc8937 >

민중가요란 무엇인가. 1960년 419세대부터 수많은 민주집회당시에 노래들이 불리어 졌고 이 때 불려진 노래들을 통칭하여 민중가요라고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땅에는 본격적인 노래운동은 시작되지 않아 창작민중가요는 존재하지 않았다. 419시절엔 애국가나 '선구자'와 같은 노래가 시위현장에서 불려졌다. 그리고 70년대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나 '친구'와 같은 노래가 민중가요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이는 창작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회적 흐름에 재해석되어 불려졌기 때문에 창작민중가요로 보긴 어렵다. 더군다나 문주란의 '백치아다다'나 심수봉의 '무궁화'와 같은 노래는 대중가요로 만들어졌지만 운동권에서 불려져 결국 제도권에서 금지곡으로 묶인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창작민중가요는 70년대 말엽에 김지하 시에 곡을 붙인 '타는 목마름으로'나 백기완의 시에 곡을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등이 시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들 노래는 구전으로 전해오다 518을 겪으면서 이들 노래들이 불려졌고 '서울의 봄'이후 창작 민중가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사회운동권은 노래운동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80년대 초반부터 서울대를 중심으로 '메아리'라는 노래모임이 결성되고 이를 통해 본격적인 노래운동이 시작된다. 특히 85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명칭으로 음반을 제작해서 민중가요의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노찾사 2집에서는 안치환의 등장으로 민중가요의 대중화에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80년대 민중가요의 성가인 '솔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광야에서'를 최초로 음반화하여 제도권 라디오 전파에 실어 보내는 결실을 맺는다.

 안치환은 80년대에서 90년대초반에 걸친 이 땅의 창작민중가요의 대명사이다. 그가 노래를 시작한 것은 여타의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큰 스타가 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간에 그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참여했고 창작 노래운동에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안치환은 가수이전에 작곡자로 탁월한 능력이 있다. 대학시절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민중가요의 성가를 비롯해서 '마른 잎 다시살아나','철의 노동자','지리산'에서의 멜로디라인은 매우 훌륭했다. 노찾사 2집의 성공은 안치환으로 비롯되었고 민중가요의 대중화 역시 안치환으로 가능했다. 노찾사 활동이후 안치환은 솔로로 독립하여 두장의 앨범을 연이어 발표한다. 이 두장의 앨범에 대해 안치환은 사기를 당했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잘못된 기획자를 만나 앨범의 완성도는 고려되지 않은채 제작된 좋지 않은 앨범이란다. 솔직히 안치환 1,2집은 노찾사 앨범에 실린 자신의 곡을 다시부른 음반에 불과했다. 레퍼토리 역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비롯한 그가 남긴 노찾사 2집의 대표작을 엮어논 것외에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음반이다. 녹음상태도 열악했고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 쉽게 사장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두장의 음반은 나중에 '안치환 1+2'라는 타이틀로 재녹음되어 발표되기도 했다. (노스텔지아 음반과 함께 이 '안치환 1+2'는 과거 정리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안치환의 솔로 활동은 3집을 데뷔 앨범으로 보는 것이 좋다. 3집은 '소금인형','귀뚜라미'와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돋보이는 모던 포크계열의 음반이다.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대표작 '자유'에 곡을 붙여 부르기도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듯한 '독백'등이 담겨있다. 전반적으로 제도권으로 진입하려는 시도와 이전 민중가요 스타일 공존한 음반이다. 조동익, 함춘호 등 실력있는 세션들이 참여해서 '소금인형'과 '귀뚜라미'등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상업적으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음반이지만 이후 안치환의 테마송이 되다시피한 '자유'가 실린 음반으로 안치환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음반이며 그만큼 가능성을 보인 음반이기도 하다.

 3집이후 발표한 '노스텔지어'는 7-80년대 민중가요로 현장에서 많이 불려졌던 '타는 목마름으로','청산이 소리쳐부르거든' 등의 노래를 음반화한 앨범이다. 거의 구전으로 내려오고 이렇다 할만하게 음반화되지 못한 곡들을 안치환의 목소리를 통해 제작한 것이다. 물론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논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지닌 음반은 아니지만 노래운동의 현장에서 청춘을 바친 안치환은 그 노래운동의 역사를 정리할 자격이 충분했고 또 그만이 해낼수 있는 작업이었다. 또 '노스텔지어'를 끝으로 이제 비제도권의 노래운동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형태의 '대중속의 노래운동'의 시작의 의미로 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이후 4집을 통해 안치환은 제도권에 성공적인 안착을 하고 소극장 라이브가 아닌 대규모 콘서트를 가능케하는 메이져급 뮤지션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안치환 4집은 상당히 의외성이 강한 음반이다. 안치환이 4집에서 선택한 장르. 그것은 바로 록rock이었던 것이다. 여지껏 가곡풍으로 웅장함과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단조로운 포크송을 주로 노래했지만 4집에서는 샤우팅 창법이 주가 되었다. 어쿠스틱 기타는 일렉기타의 강렬한 스트로킹으로 바뀌었고 멜로디 중심에서 리듬이 강조되는 스타일로 변화되었다. '수풀을 헤치며'와 '당당하게'는 새로운 포크록커로서의 변신을 알리는 멋진 외침이었다. 또한 '내가만일'이라는 빅히트곡은 일약 30대 스타 가수 반열에 올라 서게끔 해주었다.

 포크록은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고전적인 장르이면서도 대중음악의 마지막 대안이다. 가사를 중요시하며 메시지를 통한 외침을 즐기는 이 땅의 대중음악의 토양에 포크록만큼 잘 어울리는 장르도 없다. 헤비메틀로 발전된 하드록은 비록 음악 성격자체에서 내뿜는 고출력 사운드는 모든 장르를 아우를 힘은 있으나 이 땅의 모든 대중을 흡수하기엔 너무 자극적이다. 하지만 포크록은 다르다. 모던포크의 장점과 록의 리듬감을 적절히 융합시킨다면 이보다 더 대중적인 장르도 없다. 1인 밴드가 가능하고 어쿠스틱 기타도 일렉기타도 모두가 표현이 가능해 누구도 접근이 용이한 장르가 바로 포크록이다. 그러나 한대수 이후 우리에겐 이렇다할 만한 포크록커가 드물었다. 들국화가 높은 음악적 완성도로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개성강한 멤버들의 이합집산으로 너무 쉽게 해체되고 말았다. 이런점에서 안치환의 4집 성공은 포크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또한 안치환은 4집을 통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발견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5집부터는 '안치환과 자유'라는 백밴드를 조직해 세션연주에 완성도를 높인다. 5집에 실린 '희망은 있다'는 그런 안치환 사운드의 핵심이다. 김남주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으로 노랫말의 아름다움과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가 잘 어울린다. 특히 안치환의 허스키 보이스에 어우러진 기타 에드립 또한 훌륭했다. 5집에는 이곡 이외에 예전에 꽃다지가 부르기도 했던 '사랑은 꽃 보다 아름다워'를 경쾌한 하드록 풍으로 재해석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4집과 5집을 통해 안치환은 포크록커로서 완전한 변신을 했고 또 안치환 사운드의 확립이라는 커다란 수확을 거둔다. 6집에는 '돌맹이 하나'와 같은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곡들과 '그대 있음에','사랑하게 되면'와 같은 대중적인 곡들이 적절히 배합된 음반으로 다소 4,5집보다는 부드러운 스타일을 추구했다.

 6집에 이어 최근에는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했던 자신들의 작품들을 한데 묶어 '리멤버'라는 비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저 창살에 햇살이','자유','희망은 있다','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등 의미있는 가사와 안치환 음악의 발전 과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음반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희망은 있다'의 리메이크로 5집에 실린 곡보다 기타의 애드립 연주가 더 강조되어 완성도를 매우 높인 점이다.

 안치환은 소위 386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격변의 신군부시대에 대학생활을 하며 노래운동을 이끌었다. 그 노래운동의 한 중심속에서 그가 쓰러지지 않고 지금껏 변함없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90년대 몰락한 운동권의 틈바구니에서 제도권과 노래운동사이를 가장 이상적으로 파고든 뮤지션. 록이라는 새로운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켜 자신만의 사운드를 생산해 낼 줄 아는 안치환은 정말 음악을 제대로 아는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어느정도 대중적 지지도와 함께 얻어진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제도권에서의 수익성보다 안치환 음악에서 철학적 지지기반인 김남주 시인의 목소리를 새천년 자신의 첫번째 음반과 함께 한 점은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안치환은 자신의 본류를 잊지않고 그 속에서 더 나은 발전을 꾀하는 진정한 아티스트인 것이다.

 정상의 위치에서 자신의 사상적 본류인 김남주의 시에서 자신의 음악을 뽑아낼 줄아는 안치환은 새천년 수많은 장르와 사운드가 난립하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여전히 대중음악을 이끌수 있는 파워를 지닌 뮤지션으로 자리할 것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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