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데뷔/결성 : 1960년대
활동 시기 : 1960년대 ~ 1970년대
멤     버 : 솔로활동
조 회  수 : 486

쇼 무대를 장식한 독보적 명물

'쾌지나 칭칭나네' 와 원숭이 흉내로 널리 알려진 김상국. 쇼 무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물로서 그가 공연시절 남겨놓은 에피소드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가요계에서도 알아주는 재주꾼이었던 김상국의 전성기시절 이야기를 무대 사회자 최성일씨가 전한다.

'불나비' '쾌지나 칭칭나네'의 가수 김상국(金湘國). 그는 너무나도 재미났던 사람이었다. 나는 감히 우리 공연 역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독보적인 '명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현장 코미디에 대한 순발력과 소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60년대 말 전국을 강타한 '10대가수쇼'를 다닐 때 여가수중에는 현미(玄美)가 돋보였다면 남자가수 중에는 단연 김상국이었다. 그가 출연자명단에서 빠지면 도무지 공연을 떠나고 싶은 기분마저 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1967년 7월 작고한 백봉호씨가 단장이었던 '서울 쇼'주최의 부산공연을 내려갔었다. 교통수단은 버스를 이용했는데 공연단원들은 버스 안에서 일단 부산에 도착할 때가지 예정에 없는 '김상국 원맨쇼'로 한바탕 흥겹게 웃고 즐길 수가 있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노래와 짓궂은 이야기,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숭이 흉내'로 혼자서 차치고 포치고, 북치고 나팔불고 잘도 했다. 공연단원들은 배 가죽이 등에 붙어버릴 정도로 가쁜 숨을 내쉬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다가 김상국은 간혹 열이 나면 성원에 답례라도 하듯 팬티까지 홀랑 벗기까지 했다. 자신의 재주는 물론 신체까지 '속속들이' 드러냈던 것이었다.

부산에 숙소를 정하고 난 뒤에는 한 술 더 떴다. 어땠냐하면 금남구역이었던 여자단원들의 방에 슬그머니 다가가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는 자신의 그것만을 불쑥 집어넣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면 여자들은 대경실색하여 “어머나! 이게 뭐야?”하면서 악악거리며 비명을 내질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연예계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김상국의 적나라한 속 모습을 구경했던 사람이 너무나 많다.

마치 자장가가 필요한 성인(成人)이라도 되는 듯 악동(惡童)같은 그의 짓궂은 행동은 1971년 서울'시민회관' 공연에서도 나타났다. 비좁긴 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분명히 남자화장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상국은 조금만 급했다하면 막간 뒤에서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당시 시민회관 무대감독이었던 배영달(裵永達)씨는 이런 무례한 장면을 발각하자 두눈에 쌍심지를 켜고 김상국을 다그쳤다. 그래도 그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듯 “지금 곧 내가 무대에 나갈 차례요. 시간이 촉박해서 그러는 데 좀 어때요?”하고 응수를 하는 것이었다.

김상국이 사과를 해서 둘의 말다툼은 끝나지만 예의 그 버릇만은 고쳐지지를 않았다. 그 후에도 무대 뒤에서 소변을 보는 사례는 자꾸 되풀이됐고 배영달씨도 마침내 두손을 들고 충고나 지적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김상국의 이런저런 기행(奇行)에 악의가 개입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단지 동료들과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선의의 최대량이었고 악의는 어디까지나 극소량이었다.

1960년대 말 쇼 무대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연고지인 부산일대에서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당시 '진로소주' CF모델이기도 했던지라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지 않고 진로CM송(“진로한잔 꽈악 꽈악! 진로 파라다이스”)만해도 객석에서는 앙코르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쾌지나 칭칭나네'는 참으로 일품이었다. 한번 불렀다하면 별별 얘기를 붙여서 30분도 좋았고 1시간도 좋았다. 대부분현장분위기를 봐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늘렸던 것인데도 한 치의 실수나 어긋남 없이 척척 아귀가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재주가 많은 양반이 어째서 하필 가수가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1974년 6월 서울 시민회관 공연 때였다. 무대에는 '사장과 사장 딸'이라는 코미디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 마지막 부분에 사장의 딸이 출연하기로 돼있어 객석에서는 “누가 나올까?”하고 잔뜩 긴장하고있는데 느닷없이 김상국이 여장(女裝)을 하고 나타났다. 그 배역을 맡았던 여자가 펑크를 내자 그가 대신 역할을 자청했던 것이다.

영국가수 보이 조지 같은 예쁜 남자가 여장을 해도 섬뜩한 판에 그 얼굴 그 체격에 여인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으니 그게 얼마나 가관이었겠는가. 손님들은 극장 천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커다란 환성을 내질렀다.

코미디가 끝나자 공연에 참여했던 가수 김정구(金貞九)선생은 “야, 김상국! 너 최성일이보다 더 코미디 잘 한다”며 감탄조의 칭찬을 해주었다.

그의 재주는 여기서 그치지를 않는다. '웬 더 세인츠 고 마칭 인(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부를 때는 전설적인 미국의 재즈 맨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처럼 직접 트럼펫을 들고 나와 밴드를 방불하게 하는 솜씨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루이 암스트롱 특유의 노래 방식인 스캣(scat)도 기막히게 흉내냈다. 당연히 그의 별명은 '한국의 루이 암스트롱'이었다.

트럼펫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비롯한 거의 모든 악기를 능수 능란하게 다루었다. 고수머리에 키도 작고 안짱다리였지만 춤 솜씨 특히 스윙은 특출 났다. 얼핏 보기에는 춤에 적당하지 않은 체격 같았지만 웬만한 늘씬한 남자보다도 그의 춤은 더 훌륭했다. 얼마 전에 죽은 '할리우드 춤의 전설'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의 환상적 댄스의 비결이 바로 안짱다리였다는 외신을 접한 바가 있는데 나는 그 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는 체격의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라도 천재지변이 없는 한 반드시 의상은 정장을 하는 버릇을 들였다. 무대에 대한 진지한 자세의 소유자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1968년 경남 진해 모 해군부대에 위문공연을 갔던 적이 있다. 도착해보니 그 부대의 강당에 마침 권투 링이 설치되어있었다. 이 때 '논개'(이동기의 '논개'가 아니다)의 가수 남성봉(南星奉)씨가 동행했는데 그는 과거에 권투를 좀 했다면서 김상국에게 '한판 붙자!'며 결투를 신청했다. 그러나 남성봉씨가 명색이 선배였는데도 그는 김상국에게 무참히도 얻어맞았다.

나는 김상국의 재빠른 발놀림과 펀치에 놀라기도 했지만 우선 그의 우람한 근육질 체격에 깜짝 놀랐다. 정장을 했을 때는 몰랐는데 옷을 벗으니 굴곡이 뚜렷한 매우 탐나는 체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래 권투선수가 아니라 테니스 선수출신이라고 했다. 그 우람한 몸은 그러니까 테니스로 다져진 것이었다. 그래서 김상국은 운동신경이 발달한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이런 정열적인 기질에 걸맞게 그는 남과의 인간관계에도 무척 적극적이었다. 얼마 전 야간업소에서 그와 공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나더러 “여기는 홀이 너무 좁아서 너에게는 맞지 않는다. 다른 좋은 업소가 있으니 거기 가서 일하도록 하라!”며 대우가 좋은 고급업소를 소개해주었다(김상국은 내게 선배다).

다시 말해서 김상국은 선배 후배 그리고 동료에게 선심을 베풀 줄 아는 인정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가 장점으로만 둘러싸인 것은 아니다 겉보기와 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단점도 있었다.(하긴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 일례가 쇼 진행할 때의 순서다. 군부대 위문공연에서도 그랬지만 “먼저 하고 빨리 갈 테니까 맨앞순서에 넣어달라”고 생떼를 쓰는 게 무슨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 순간만 되면 솔직히 말해서 얄미웠다.

또 의외로 까다로운 기질이어서 지방공연을 가면 이불이 깨끗지 못하거나 시설이 뒤떨어진 여관에는 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물며 본인의 판단에 조금 지저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과는 함께 잠자리도 갖지 않은 성격이었다. 내가 깨끗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는 동침을 해주었다는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후한 사람에게 이렇듯 '거리를 두는' 일면이 있었다. 정신 없이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술과 담배는 전혀 못했으며 시간만 나면 책읽기를 좋아해서 때때로 '독서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정말 양극단은 함께 어울리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성격이 혼합되어 한마디로 묘사하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김상국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에피소드를 낳은 그와의 공연시절을 나는 정녕 잊을 수가 없다.

  1987/12 임진모 (jjinmoo@izm.co.kr) /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