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디바' 빌리 홀리데이의 일생

을유문화사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아주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의 미국의 중요한 팝 가수들은 모두 어떻게든 그녀의 천재성에 영향을 받았다. 나에게 지대한 음악적 영향을 주었고, 여전히 그러한 사람이 바로 빌리 홀리데이이다. '레이디 데이'는 분명이 지난 20년간 미국 팝 보컬 역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프랭크 시내트라)

빌리 홀리데이(1915-1959)는 생전에는 무대에서의 우아한 자태와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로 '레이디 데이'로 칭송받았고 사후에는 20세기 재즈의 전설이 됐다.

그녀가 전 미국적인 관심을 받은 것은 1939년 뉴욕의 클럽인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를 부르면서였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린다…"로 시작되는 노래는 당시 미국 남부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흑인에 대한 백인의 폭력을 고발하는 노래였다.

당시 클럽에서는 모든 조명을 끄고 웨이터들도 서빙을 멈춘 가운데 작은 핀조명 아래에서 얼굴을 드러낸 홀리데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쇼의 끝 순서가 됐다.

"전국지들이 흑인 사진을 싣지 않았다. 그러나 빌리 홀리데이가 '이상한 열매'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타임'이 그녀의 사진을 게재하고 기사를 실었다. 흑인 사진이 '타임'이나 '라이프'에 실린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카페 소사이어티 주인 바니 조지프슨)

홀리데이는 처음에는 그 노래의 의미를 몰랐고 노래에 몰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던 19살 어머니와 떠돌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느순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음악저술가 도널드 클라크가 그녀의 삶을 복원해 쓴 전기 '빌리 홀리데이-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을유문화사 펴냄)는 20세기 최고 재즈 디바의 탄생기인 동시에 마약과 알코올에 몸을 맡긴 한 흑인여성의 비극적인 인생 이야기다.

친구와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된 홀리데이의 일생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미국 흑인 음악이 뉴욕에서 성장해가는 여정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즐겨듣던 소녀가 11살 때 강간당하고 14살 때부터 매춘을 시작해 섹스와 알코올, 마약에 빠져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읽어가노라면 그녀가 나른하고도 쓸쓸한 목소리로 반주보다 살짝 늦게 부르던 노래들이 귓가를 맴돈다.

그녀는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았지만 자신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내 식대로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예요"

또 내성적인 성격과 무대 공포증으로 클럽안에 있으면서도 출연 예정시간이 지난 뒤까지 분장실에서 꾸물거렸다. 늘 청하지 않으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자진해서 노래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2번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들은 마약 공급자이거나 뚜쟁이들이었다. 자신을 돌보는데 무지했던 그녀는 어지간한 남자 열사람보다 많은 분량의 마약을 하느라 말년에는 1달러를 찾기 위해 서랍을 뒤져야하는 신세였다.

1959년에 그녀가 간경화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당시 은행 잔고는 0.7달러였다. 사망 1시간 전 간호사들은 그녀가 다리에 묶어놓은 50달러 지폐다발을 발견했다.

을유문화사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제15권. 한종현 옮김. 760쪽. 3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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