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돌아온 한국대중음악의 선구자 신중현 (Rock)

Rock 'n Roll History

이름: 임진모

2006/4/15(토)

돌아온 한국대중음악의 선구자 신중현

◆ 돌아온 한국대중음악의 선구자 신중현

'60년대 후반 이른바 '신중현사단'으로 화려히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나, 그리고 30년이 훌쩍 지나 새 세기를 맞은 지금에나 '한국 록음악의 대부'로서 신중현의 위상은 언제나 불변이다. 그의 개인작업실 입구에 걸려있는 사진의 주인공 지미 헨드릭스처럼 그는 하나의 살아있는 신화로서, 고금의 모든 국내 대중음악인들에게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자 음악적 필수 준거로 통한다.

얼마 전 지미 헨드릭스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신중현선생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하며 희끗희끗한 머리에 무수한 감정선(線)을 가진 표정으로 사진을 다시금 뚫어지듯 응시한다. 순간 거장의 아우라가 실내를 뒤덮는다.

어느덧 나이 64세, 음악적 강골(强骨)이 무뎌져 어쩌면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도 모를 음악인생 말년이다. 하지만 도리어 최근 그의 행보는 숨가쁘다. 마치 최고참으로 우리 음악계에 뭔가 자취를 남겨놓아야겠다는 듯, 굵은 나이테만이 전할 수 있는 귀감을 보여야겠다는 듯 강한 의욕을 드러낸다. "아직 맘에 꼭 맞는 곡, 앨범을 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여기서 아직 쭈그리고있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도 꺾이지 않는 창작의지와 호연지기가 낳은 최근 산물은 오투레코드에서 막 출시한 [Artists]란 이름의 앨범이다. 대중음악의 기본이라 할 블루스와 재즈 음악 연주자들을 한데 묶는다는 컨셉 아래 구체화된 이 두 장 짜리 CD에는 이정선 엄인호 최이철 김목경 김도균 신대철 등 고참을 비롯하여 한상원 정원영 한충완 잭리 그리고 윤상 김현철 이적 박선주 차은주 등 현재 활동중인 연주자와 가수가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그 23명의 신구(新舊) 아티스트들 가운데 우뚝 선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가을 나그네'란 노래를 선사하고있는 둔중한 이름 신중현이다. 뒤틀린 보컬이 전편을 관통하는 가운데 후반부 강렬한 블루스 기타연주가 인상적인 이 노래를 두고 신중현선생은 "내 인생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곡 분위기나 가사가 비참해요."라고 운을 뗐다.

출신이나 역정, 자세의 제반 측면에서 '가장 완벽한 록 뮤지션 모델'이란 평을 듣는 분답게 로커의 정체성을 일러주는 듯 언급 또한 지극히 스트레이트하다. "남들이 좋아하건 말건 간에 내가 하고싶은 대로 만든 곡입니다. 내가 지금 뭐에 맞춰 할 나이인가요. 그 점에서 곡이 맘에 듭니다."

그러나 "장·단조를 초월하고 코드를 중요시하지 않고 '한국적 블루스'를 쓴다는 생각 하에 한국적 가락으로 록 기분을 낸 곡"이라며 곡에 대한 설명도 거르지 않았다. '90년대에도 그는 전기기타 산조 앨범 [무위자연]('94년)과 장타령조와 록의 결합을 꾀한 음반 [김삿갓]('97년)을 잇따라 내놓긴 했으나 이번 곡은 직접 노래도 부른데다 대중가요적(?) 그릇에 담은 곡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스스로도 "모처럼의 신곡이죠. 싱글 측면에서는 15년 아니면 20년만에 쓴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신중현선생의 힘찬 활동 재개는 이 음반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던 18곡을 엄선해 다시 연주하고 노래한 [신중현 베스트] 앨범을 목표로 현재 마지막 믹싱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월에는 매장에 선보일 예정인 이 앨범은 '신중현사단'소속 가수들인 김추자, 펄 시스터스, 장현, 박인수, 김정미, 이정화 등이 불렀던 '미련' '봄비' '님은 먼 곳에' '아름다운 강산' 그리고 그룹 엽전들 시절의 보석인 '미인' 등 18곡이 수록된다.

이 앨범의 의도는 결코 컴필레이션의 상업성에 있지 않다. 우선은 음악사의 거장이란 찬사에 대한 무한한 감사 이를테면 '역사와 대중에 대한 서비스'이며 또 하나는 인터뷰 도중 더러 격하게 토로하듯 '거짓말 음악이 판치는 시대'에 진정한 음악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내보이기 위함이다. 이제까지 쓴 음악 가운데 결정판은 없다고 하면서도 그는 그 곡들을 통해 한국의 뮤지션이 가져야 할 음악적 태도를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제가 쓴 곡은 모든 장르가 다 나와 한바퀴 돌아야 그 가치를 알 것입니다. 모든 유행을 거치고 나도 살아남아 천연히 가치를 발하는 음악, 그 진실한 음악만이 누리는 영생(永生)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는 베스트 앨범 외에 오는 9-10월 중 야외 대형무대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회심의 프로젝트에도 그의 의중은 강하게 투영되어있다. 록 뿐 아니라 대중음악이 구태(舊態)를 혁파하기 위해 라이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파하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전 젊었던 시절 미8군 무대에서 클럽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참 많이도 연주하고 노래했어요. 그런데 클럽활동이 뭡니까? 라이브 아닙니까? 라이브를 하려면 음악도 많이 들어야 하고 다양한 음악을 해야만 합니다. 한마디로 앨범보다 더 중요한 게 라이브죠. 요즘 음악계에 라이브에 대한 요구가 일고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되가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신중현 선생이 남긴 작품들의 갖가지 스타일이 떠올랐다. '한국 록의 대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의 음악은 찬찬히 살피면 예상 밖으로 색깔과 장르가 다채롭다. 예를 들어 '커피한잔'은 록 스타일인 반면, '봄비'는 흑인음악인 소울이다. 더러 재즈의 냄새, 스탠더드 팝의 분위기를 지닌 노래들도 있고 심지어 컨트리풍 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선생님의 음악은 요즘 가수들에게는 발견하기 어려운 다양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러한 멀티 플레이는 어디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십니까?

'60년대 미8군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을 겁니다. 미8군 클럽무대는 하나의 음악 갖고는 활동이 불가능했어요. 출입하는 군인들의 출신성분에 따라 음악이 달랐죠. 가령 제가 출연한 '에어맨스' 같은 클럽은 하급병사들이 출입했고 '엔씨오' 같은 업소의 손님은 상사나 병장이 많았습니다. 또 '업소스클럽'은 장교들이 주로 출입하는 곳이었어요. '에어맨스'에선 주로 로큰롤, '엔씨오'는 컨트리, '업소스클럽'은 스탠더드 팝을 해야 했습니다. '에어맨스'에서 품격 있는 스탠더드 팝을 하면 야유를 받았어요.

또한 클럽이 어디에 위치했는가에 따라, 부대의 흑백 병사에 따라 항상 성격에 어울리는 음악을 미리 준비해야 됐습니다. 부대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급히 편곡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지요. 음악을 많이 듣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제 경험을 두고 말하지만, 많은 곡을 듣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야 다양한 음악이 나와요. 라이브가 '멀티 문화'를 낳는 거지. 그리고 음악은 멀티가 아니면 죽어요.

1938년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중퇴 후 일렉트릭 기타연습에 몰두하다 자신에게 기타를 배우려고 찾아온 미8군 쇼단의 한 무용수의 소개로 미8군 무대에 입성했다. 미8군 무대는 이로써 그의 음악경력의 서막이면서 동시에 신중현이란 존재 덕분에 한국 록음악의 발상지로 남게 된다.

1960년, 나이 스물 둘에 그는 미군 정보부 소속 '시빌리언 클럽'에서 최초로 기타 독주공연을 가져 미군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마침내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그리고 뉴 밀레니엄인 지금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록밴드 결성'을 감행한다. 그것이 한국 최초의 록그룹이란 영예를 얻은 '애드포'(Add4)였다.

하지만 애드포를 포함, 그가 '60년대에 만든 그룹들 이를테면 '덩키스', '퀘션스', '제로악단', '캄보밴드'는 모조리 대중적으로 실패했다. 그에게 환희를 안겨준 것은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고 음반은 만드는 프로듀서 분야였다. 밴드는 1974년 '미인'을 터뜨린 '엽전들'에 와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미인'과 함께 펼쳐진 힘찬 웅비는 박정희대통령의 유신시대 사슬에 의해 삽시간에 꺾이고 만다. 그 유명한 대마초파동과 가요규제조치는 그에게 '대마초왕초'라는 불명예 딱지를 붙이면서 일체의 활동중단이라는 비극을 강제했다. 이 일은 비단 신중현 개인의 불행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 전체의 고사(枯死)를 의미했다. 1980년 그는 '신중현과 뮤직파워'란 그룹을 조직해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하며 부활하지만 예전의 전성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신중현은 결코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 그리고 유신 시절과 분리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영광보다는 통제와 억압으로 그 때를 기억하실 듯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또는 그 시대와 어떤 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까?

다시 하고싶지 않은 얘긴데.... '72년이었지. 유신독재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시절이었고 나는 가요계에서 '최고'자리에 올라있을 때였죠. 어느 날 청와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 누군 지도 모르고 통화는 한 5-6분 정도로 짧았지. 한마디로 '박정희 찬가'를 불러달라는 거예요. 난 대뜸 '난 그런 노래는 쓸 줄도 모를 뿐더러 왜 하필 나한테 그런 주문을 하느냐'고 반문했어요. 그쪽이 들었을 때는 내 어투가 퉁명스러웠거나 건방졌을까? 하지만 그런 거부의사 자체를 그들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한 듯 합니다. 그 때부터 일이 꼬였어요.

신중현의 음악은 그러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질기고도 찬란한 화력(火力)을 견지했다. 결코 과거 역사의 흔적에 매몰되지 않은 것이다. 그가 남긴 곡들이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후배가수들에 의해 줄지어 재조명되면서 30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도 울리는 힘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미인'은 봄여름가을겨울에 의해, '님아'는 신효범에 의해, 그리고 '님은 먼 곳에'는 조관우와 장사익에 의해 되살아나 가요계에 이른바 리메이크 열풍을 몰고 왔다.

지난해에는 김건모가 40여년 전에 만들어진 '빗속의 여인'을 불렀다. 이것은 비단 그가 가요사의 거목이란 이유 외에 독창적인 음악성이 가져온 소산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신중현의 음악은 '천재적인 화음 전개'라는 측면에서 클래식 음악 종사자들도 그 비범함을 인정한다.

-선생님의 요즘 음악은 너무 어렵지 않나요? 과거처럼 대중적인 히트곡을 다시 쓰실 수는 없는 겁니까? '미인' 같은 곡은 지금 나와도 히트할 것 같은데요.

지금도 히트곡을 낼 수 있습니다!(크게 웃으며) 하지만 노년이 된 지금은 대중 속으로 들어갈 때가 아니라 마무리할 시점입니다. 수구(守舊)하는 것은 보기 안 좋아요. 죽기 전에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해놓는 게 중요합니다.

-근래 음악의 환경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뮤지션들도 선생님 때와는 스타일, 자세, 음악의 서술방식 등 모든 면에서 판이합니다. 요즘 음악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무리 외국음악을 해도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필요해요. 한국인이 선천적으로 보유한 정서, 고유의 얼, 가락, 장단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한국음악을 하기 위한 '근본'이에요. 근본을 바탕으로 하고 나서 공감할 수 있는 외국의 것을 받아들여야지. 이 점에서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외국의 것을 무차별로 수입해 방향감각을 완전 상실했어요. 한국문화를 메인에 놓아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있어서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60-'70년대를 석권한 신중현 음악의 정체를 간단하게 규정해달라'고 하자 신중현선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유려한 화술을 풀어냈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은 역시 로큰롤이고 그것이 지배한 시대가 60-70년대였습니다. 로큰롤은 젊음의 순수함 그리고 자유의 표현물입니다. 제가 이 땅에서 한 작업도 그것이었습니다. 단적으로 로큰롤로 음악의 자유를 실천했다는 것이겠죠. 거창하게 말해서 좀 쑥스럽긴 합니다만."

그는 손자와도 같은 후배가수들에게 당장의 인기에 대한 집착과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죽기살기로 음악 하는 고행(苦行)'의 태도를 가져야 음악이 산다고 충고했다. 말하자면 '죽어야 산다'는 것. 최근 연쇄적으로 [신중현 명반시리즈]란 이름의 CD가 다시 제작돼 나오고 있다. '69년작 김정미의 [봄비]와 '73년작 김정미의 [바람]이 이미 출시되었고 곧 펄 시스터즈나 김추자 앨범도 LP시절 음반이 그대로 복원돼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음악이 죽음을 거부하는 영구 영생 영원의 결정체임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좌일 것이다. 신중현선생의 지나간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회한 그리고 거장으로서의 비전을 들으면서 그 모든 것들이 마침 PR비 사태로 일그러진 우리 가요계에 대한 궁극적 처방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나고 나오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2002/08 임진모 (jjinmoo@izm.co.kr) / 오이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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