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 전(前) 미국 부통령은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5'에서  한국의 정보기술(IT) 발전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된 것'이라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때 교황의 사절단과 이야기했는데 그 사절단은 한국을 방문하고 여러가지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였다'고 전했습니다. (연합뉴스 2005년 5월19일자)



금속활자인쇄술 최초 발명국이 우리나라란 점은 이미 국제공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텐베르그의 인쇄술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을 것이란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앨고어의 발언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진은 개성에서 발견된 12세기 금속활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고 합니다.  


다음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은 직지입니다. 1377년 인쇄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국제공인을 받은 희귀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직지'가 충북 청주부근 흥덕사란 지방사찰에서 제작됐다는 점입니다. 당시 고려에는 국가관청이었던 '서적점'이 인쇄술이 총괄했다고 합니다. 이미 고려에서는 지방사찰 단위에서 인쇄본을 찍어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고려말에 이미 인쇄술이 널리 대중화됐던 것입니다.

앞서 고려시대엔 목판인쇄에서도 세계적인 유산을 남겼습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입니다. 대장경판이 만들어진 시기는 1237년(고종 24)부터 16년간으로,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의 격퇴를 기원하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장경은 불교에 관한 교리를 총괄한 일종의 사전입니다. 아마도 인쇄술의 발전은 고려시대 국교에 다름없었던 불교의 교리체계 확립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독실한 카톨릭신자였던 쿠텐베르그가 성경의 대중화를 통해 카톨릭의 쇄신을 도모했던 것과 같은 목적이었을 것이란 상상을 해봅니다.

그러나 고려불교는 오히려 조선시대 들어 유교의 확산, 카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융성이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구텐베르크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흔들리는 카톨릭을 바로잡기 위해  카롤릭신자들에게 성경을 널리보급할 생각으로 인쇄술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성경의 대중적 보급은 프로테스탄트의 융성을 가져왔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죠 .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본입니다.  1456년에 처음 발간됐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유럽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구텐베르크 성경 발간이후 40년만에 유럽 110개 도시에 인쇄소가 설치됐고 그뒤 10년만에 인쇄술로 발간된 서적수가 800만권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유럽은 물론 전세계에 지식정보혁명을 가져온 인쇄술은 보통사람들도 저렴한 비용으로 서적을 구입하고 아담한 서가를 꾸밀수 있게 해줬습니다. 민족단위의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대중화된 서적의 보급은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법전의 대량보급 역시 국가통치체제 구축에 큰 도움을 줬을 것입니다.



앨고어의 발언대로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한국산' 지적재산을 응용하고 발전시킨 것이었다면 정말 우리선조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할 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고려의 인쇄술이 원나라(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중반에 이르는 약 1세기 사이,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거의 동(東)아시아 전역을 지배한 몽골족의 왕국 1271∼1368)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된 바 있어 유럽이 원나라와 명나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의 기술을 받아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더해 앨고어는 '한국의 디지털 혁명은 역사적으로 보면 두 번째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발전에 기여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전세계가 인쇄술에 이어  한국으로부터 두번째로 큰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최근의 한국내 인터넷발전을 추켜세웠습니다.


다만 과연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혁명에 대해서는 보다 세심한 관찰과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벨 버커츠란 미국의 한 학자는 1994년 구텐베르크만가란 저서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전자언어의 부정적인 측면을 맹비난하면서 구텐베르크가 창출한 '안정적' 문자언어를 열렬하게 옹호한 바 있습니다.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이행은 속인들이 문자를 해득할 수 있도록 하여 계몽주의 운동의 꽃을 활짝 피웠다. 그런데 이제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성의 극치로 신격화된 컴퓨터가 나타나 문자언어의 권위를 해치는 구두언어에 기초했던 야만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

한번쯤 음미해볼만한 대목입니다.